17일 개봉한 할리우드 코미디영화 '예스맨'에서 주인공 칼(짐 캐리)은 갑작스레 테러범으로 몰려 심문을 받는다. 이란 여자를 만났고, 경비행기 조종법을 익혔고, (북한과의 접촉을 위해) 한국어를 배웠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수사관들은 "유명한 공산주의자(칼 마르크스)와 이름이 똑 같다"며 칼을 윽박지른다. 다소 억지스러운 장면이지만 9ㆍ11테러 이후 조금만 의심이 가도 한 국가, 한 사람을 테러국이나 테러범으로 몰아가는 미국 정부에 대한 풍자라 할 수 있다.
일본 야마다 요지(山田洋次) 감독의 '키네마천지'(1986)에서도 유사한 장면이 나온다. 때는 1930년대. 영화감독 지망생인 주인공은 공산주의운동을 하는 대학 동창에게 도피처를 제공했다가 곤경에 처한다. 경찰은 두 사람을 연행한 뒤 방 안을 뒤지다 결정적인 '물증'을 확보한다.
감독 지망생의 책꽂이에서 당시 할리우드를 풍미했던 유명한 코미디언 가족인 마르크스 형제에 대한 책자가 나왔기 때문. "영화 한다더니 결국 마르크스 추종자였어." 경찰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책을 압수해 간다. 사상의 자유를 억압했던 일본제국주의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비꼰 장면이다.
1990년대 초반 국내 대학가를 떠돌던 우스개도 있다. 불심검문을 하던 경찰이 독일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의 책을 지닌 학생을 골수 운동권으로 여겨 '닭장차'로 끌고 갔다는 이야기, 들어본 사람 꽤 있을 것이다. 경찰이 막스를 마르크스와 혼동했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유머라 할 수 있다.
영화나 소설이나 모든 문화는 시대를 먹고 성장한다. 시대의 불온한 공기를 채집해 사회의 감춰진 이면을 포착하고, 권력집단의 부조리를 꼬집으며 당대의 대중과 호흡하는 것은 영화의 숙명이자 의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저물어가는 올 한 해 통렬한 사회비판의식으로 대중을 속시원하게 해준 충무로 영화가 있었을까. 화려한 볼거리와 말장난 수준의 유머에만 매몰돼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현실과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되돌아볼 시점이다.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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