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계의 시각
촛불집회는 2008년 5월 2일부터 8월 27일 범불교도대회로 사실상 종료되기까지 넉 달 동안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100차 촛불집회가 열린 8월 15일까지 전국적으로 2,398차례 집회가 개최됐고, 참가 인원은 총 93만2,680명(경찰 추산)에 달했다. 촛불집회가 올해 가장 큰 이슈로 부각된 만큼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컸다. 학자들은 새로운 여론 주도세력의 등장과 소통을 게을리한 정치권의 반성을 촛불의 주된 영향으로 분석했다.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제4의 결사체인 ‘유연자발집단’의 등장을 촛불집회가 남긴 가장 주목할만한 요소로 꼽았다. 조 교수는 사회운동이 1970년대 재야운동, 80년대 민주화운동, 90년대 시민운동에 이어 2000년대 촛불집회로 발전했다고 규정했다.
촛불집회를 이끈 ‘유연자발집단’은 90년대까지 사회운동을 이끌었던 조직들과 차별화된다. 조 교수는 조직의 유연성, 합리성, 전문성 등이 시민적 욕구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가 되자 온라인을 중심으로 탈조직화된 집단이 출현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가 대표적이다. 그는 “시민단체 자체의 구조적 한계를 온라인 공동체가 특유의 유연성으로 뛰어 넘었다”고 평가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존 정치에 국민들이 일침을 가한 것을 촛불집회가 거둔 가장 큰 효과로 들었다. 제도정치에서 생활정치, 욕망의 정치에서 가치의 정치, 대의정치에서 참여정치로 향하는 전환점이 2008년 촛불집회라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촛불집회는 겉으로는 쇠고기 협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국민들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정책을 결정한 정부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여느 사회운동처럼 촛불집회도 지속되기는 어렵지만 정부가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지속하면 국민들의 격렬한 저항, 예컨대 제2의 촛불을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다수당이 됐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려고 하면 반드시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로부터 반대를 받는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면서 “정치에서 소통과 타협, 조정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중요한 계기였다”고 분석했다.
다만 촛불집회가 대의민주주의에서 직접민주주의로의 전환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신 교수는 “대의민주주의가 국민들의 욕구, 불안, 고통을 수용하지 못할 때 일시적으로 국민들이 거리로 나온 것이 이번 촛불집회”라며 “직접민주주의가 대안으로 부상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국민들이 힘을 합쳐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지만 이런 거리민주주의가 현실적으로 상례화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촛불이 정치의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변화의 칼날이 정부보다는 여야 정당으로 향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구체적인 대안 없이 촛불시위대의 주변을 전전하면서 어부지리를 노렸다”고 비난했다.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큰 틀에서 정부와 동일한 지향점이 있었어야 했는데 비협조로 일관했고, 국민을 설득하는 것을 정부의 몫으로만 돌렸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에 새로운 정치적 세력이 등장했다는 분석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 했지만 정당성을 얻지는 못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5월말, 6월초에 접어들면서 격렬해진 탓에 초기 ‘식생활 안전을 위한 촛불집회’의 순수성이 사라졌다”면서 “3개월 이상 장기화한 집회로 인해 광화문 일대 상인들이 경제적으로 피해를 본 것도 정당성을 잃게 만든 주원인”이라고 말했다. 곽 교수는 “촛불집회가 몰개인ㆍ몰개성화하면서 집회 현장에서는 큰 힘이 됐지만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는 군중심리를 이용한 과격시위의 전형이었다”면서 “한층 성숙한 평화적 시위문화는 어떤 것인지 심도 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 촛불 그후
연인원 100만명(경찰추산 93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100일 동안 타오른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는 올해 최대 '블록버스터'였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집회 주동자들에 대한 1심 공판이 이뤄지고 있으며, 미국산 쇠고기 불매운동과 각종 촛불 행사 등으로 잔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
문화제 형식이었던 촛불집회가 6월1일을 기점으로 과격 양상을 띠면서 많은 사람들이 경찰에 연행돼 사법처리됐다. 입건된 사람만 1,600여명에 달한다. 서울남부지법은 촛불집만?촉발한 MBC 측에 주저앉는(다우너) 소를 광우병 소처럼 방송한 것 등 일부 내용에 대해 정정ㆍ반론보도를 하도록 판결했지만 MBC측은 항소한 상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도 6월 한진희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어청수 경찰청장 등을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촛불집회를 주도한 혐의(집시법 위반)로 수배돼 서울 중구 조계사에 피신했던 박원석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 김동규 진보연대 정책국장, 백성균 미친소닷넷 대표 그리고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등 6명도 모두 붙잡혀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진행될 예정이다.
검찰은 이들이 주도한 촛불집회를 불법 야간시위로 규정해 기소했다. 하지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박재영 판사는 같은 혐의로 기소된 안진걸 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의 신청을 받아들여 집시법 10조와 23조1호에 대해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안 전 팀장에 대한 선고가 연기됐으며 촛불집회 불법 시위로 입건돼 재판에 회부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헌재 결정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전망이다. 헌재는 1994년 4월에는 같은 내용을 규정한 옛 집시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촛불집회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반대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최근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미국산 쇠고기 불매운동은 그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지난달 27일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 할인점에서 미국산 쇠고기 판매가 시작되자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등에서 불매운동을 전개했다. 대책회의는 매주 화요일 대형 할인점 앞에서 불매운동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지난달 28일 이마트 남양주점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호주산으로 이중 표기했다가 적발된 사실이 알려지자 인터넷 상에서는 이마트 불매운동이 불거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형 할인점의 판매 재개에 대해 소비자들의 반응은 "불안하다"와 "싸니까 사겠다"는 반응으로 엇갈린다.
촛불에 대한 추억을 되살리려는 시민들의 모임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서울 명동 길거리 한복판에서 열리는 '널 기다릴께 무한도전×2'라는 행사와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매주 수요일 저녁 열리는 '촛불 산책'이 그것이다. 지난 9일 한 명으로 시작된 '널 기다릴께 무한도전×2'는 날마다 참가자 수를 두 배씩 늘려 나가는 일종의 '플래시 몹' 행사지만 사실상 촛불집회의 변형으로 이명박 정권에 대한 항의성 집회의 성격을 띠고 있다. '촛불 산책' 역시 촛불을 추억하자는 취지로 시작, 18일 17번째 행사를 진행했다. 이에 경찰은 '미신고 야간집회'로 간주해 해산하거나 처벌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또 다시 갈등이 표출될 가능성이 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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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6월의 촛불은 무엇이었나
2008년 여름 우리사회는 촛불집회의 뜨거운 열기에 뒤덮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으로 촉발된 촛불시위는 5월부터 8월까지 이어지면서 적지않은 화두를 던졌다. 새로운 정치적 의사 표현의 방식으로 주목을 받으며 먹을 거리 안전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반면, 집회가 장기화하고 일부 폭력시위로 변질되면서 찬반 논란이 거셌다. 촛불 반대 맞불집회가 뒤따르면서 이념 대결 양상으로까지 번졌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당시 촛불시위 현장에 있었던 시민들에게 '2008년 촛불'의 의미를 들어봤다.
정혜원(33ㆍ유모차부대 카페 운영자)씨 = 처음엔 정부의 협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 촛불에 참여했지만, 정부가 국민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더 열심히 참여했다. 촛불은 우리사회에서 정치,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민주시민으로서 역할을 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이후 일상생활에서 먹거리 안전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었다. 지금은 그때 알게 된 엄마들과 한우 공동구매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장훈(29ㆍ북디자이너)씨 = 살고 싶어서 (거리로) 나왔다.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먹으면 생명까지 위태롭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당연히 수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부가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일반 대중이 거리로 나온 것이다. 촛불은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이 다양한 의사소통의 창구를 갖게 된 지금 이 사회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촛불의 취지나 목표가 무뎌지는 것 같아 아쉽다.
현철(46ㆍ개인사업)씨 = 대학시절에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항상 적극적이었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최소한의 활동밖에 할 수 없었다. 1남2녀의 아빠로서 민주주의의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참여했다. 촛불의 의제가 광우병 쇠고기에서 출발했지만 이를 통해 우리사회의 부조리들이 하나 둘 드러나는 계기가 됐고, 이러한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한 자생적인 시민들의 모임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고 싶다.
차정현(26ㆍ건축설계사)씨 = 광우병 쇠고기 수입 문제를 보면서 많은 부분이 부당하다고 느꼈다. 정부의 협상 태도 등에서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많았다. 여고생 등 어린 학생들이 거리로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껴 참가했다. 촛불은 정치, 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참여의 현장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때때로 모인 취지와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까웠다.
반기웅(27ㆍ대학원생)씨 =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확산되어가는 광우병 쇠고기 문제에 대한 여론이 정말 어떤지 확인하고 싶어서 참가했다. 촛불은 우리사회의 변화된 시민의식을 보여준 사건이다. 다양한 세대가 참여할 수 있는 자발적이고 건강한 집회문화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사회적 의미가 크다. 나 자신 촛불집회 참가를 계기로 모 방송사의 시사프로그램 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사회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신찬영(50ㆍ전의경부모전국연합 회장)씨 = 전ㆍ의경을 자식으로 둔 부모로서 시위 현장에서 일어나는 불법적인 시위대의 행동들을 보면서 도저히 집에만 있을 수는 없어 촛불현장에 갔다. 촛불집회가 변질되는 모습을 보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적 시민의식이 후퇴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촛불시위를 통해 과연 집회와 시위라는 것이 어떠한 방법으로 건전하게 정부와 국민간의 의사소통의 길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박재영(33ㆍ서울경찰청 소속 전경 중대장)씨 = 현재 있는 부대에 올 3월 3일 부임해 촛불집회가 시작된 5월부터 마무리 된 9월까지 100여일 동안 집회현장에서 거의 매일 철야 근무를 했다. 촛불집회가 처음 열렸을 때 취지는 많은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부 참가자들에 의해 폭력시위로 변질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고 답답했다. 정당한 법 테두리 안에서 국민과 정부가 신뢰를 쌓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경욱(30ㆍ회사원) = 5월 처음 참가한 촛불집회 현장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문제에 대해 너무 왜곡된 사실들이 퍼지고 있는 것을 보고 문제의식을 느껴 참가하게 됐다. 촛불집회는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확산된 참여문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었지만, 최초의 목적과 취지가 변질되면서 국민들을 뭉치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열되게 했다. 열린 사회에서 왜곡된 여론을 만드는 것을 소극적으로 지켜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정리=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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