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은 날로 떨어지는데 재고는 쌓이고…."
LCD와 반도체 업계의 시름이 깊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시장을 꽁꽁 얼리면서 판로가 완전히 막힌 탓이다. 급기야 감산과 자산 매각이라는 마지막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당장 재고를 줄이고 긴 겨울을 견디기 위해서다.
LCD, 줄이고 또 줄여라
1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가 연말을 기해 LCD 감산에 들어간다. 외형은 공장 직원들의 선택적 휴무지만, 사람이 없으면 물건을 만들 수 없으니 사실상 감산인 셈이다. 두 회사 모두 생산 직원들의 휴가 기간 동안 완전히 생산 시설을 멈추는 것은 아니지만, 인력이 줄어드는 만큼 생산량도 줄어든다.
삼성전자는 이달 말부터 내년 1월 초까지 경기 기흥, 충남 탕정 및 천안 LCD 공장 직원들의 권장 휴가를 통해 생산량 조절에 들어간다. 그나마 꾸준히 팔리는 40인치 이상 대형 LCD TV 패널을 생산하는 탕정 공장은 휴무 인력이 거의 없지만, 모니터와 노트북, 휴대용 디지털기기 LCD를 주로 생산하는 천안 및 기흥 공장은 생산 인력이 돌아가며 휴무에 들어간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휴가 기간 생산량이 줄어드는 만큼 재고 감소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LG디스플레이도 24일부터 내년 1월 4일까지 파주와 구미 공장 직원들의 휴가를 통해 LCD 생산량을 줄이기로 했다. LG디스플레이 측은 "휴가 기간 장비 보수와 청소, 신제품 개발 시험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 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말 이후 대만과 일본 업체들도 일제히 감산에 들어갔다. 대만 AUO와 CMO는 평소 생산량의 절반, CPT는 심지어 30% 수준까지 떨어뜨렸다. 일본 샤프도 휴대폰과 모니터, 노트북용 LCD를 생산하는 중소형 라인 2개의 가동을 중단했다.
LCD 업계가 감산으로 내몰린 것은 경기 침체에 따른 판매 부진 탓이다. 그만큼 가격도 떨어져 연초 532달러였던 42인치 LCD 패널 가격은 이달 들어 375달러까지 하락했다.
감산과 가동 중단은 시장 재고량을 조절하면서 가격 인하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번 LCD 업계의 감산은 비수기인 1~2월과 맞물려 있어 가격 방어 효과가 크지 않을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1, 2월은 디지털 기기 수요가 없는 비수기여서 감산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생산량을 줄였는데도 가격이 오르지 않으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백약이 무효한 셈"이라며 "이제는 바닥을 확인할 때까지 버틸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문제는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시기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빠르면 내년 2분기부터 LCD 가격 반등을 기대하고 있으나 장담하기는 어렵다"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반도체, 현금을 모아라
반도체 업계의 최대 이슈는 현금 확보다. 반도체 가격이 급락함에 따라 당장 생존을 위해 현금 확보가 최우선 과제로 등장한 것이다. 이미 낸드플래시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모두 올해 3분기 적자를 냈고, 4분기 상황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메모리 반도체의 쌍두 마차인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은 연일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날 현재 1기가비트(Gb) D램 현물가는 0.60달러, 8Gb 낸드플래시는 1.09달러에 머물고 있다.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연초 1.9~3.3달러를 호가한 만큼 1년 새 3분의 1 토막이 난 셈이다. 경기 침체의 골이 워낙 깊어 당분간 가격 반등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생존을 위해서는 당장 먹고 살 자금 마련이 시급한 과제다. 하이닉스는 현금 확보를 위해 연수원과 야구장, 미국 유진 공장 및 중국 C1 공장의 생산 시설을 매각할 계획이다. 하이닉스 측은 "현재 확보한 8,000억원의 현금을 포함해 유진 공장 및 일부 부동산 매각, 인건비 조정 등을 통해 2,000억원을 추가 확보, 연간 1조원의 현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그나마 삼성전자는 6조~7조원의 현금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하이닉스보다는 사정이 낫다. 그렇지만 시장 회복 기미가 없어 최악의 경우 감산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삼성전자 측은 "절대 감산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 지원 방침을 밝힌 대만 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며 "상황이 더 악화하면 감산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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