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경기 이천시 장호원초등학교 도서실. 미닫이 문을 두드리자 한 젊은이가 활짝 웃으며 반갑게 맞는다. 사서 한원민(28)씨다. 시각장애 1급인 그는 올해 첫 실시된 중증장애인 공무원 특별채용시험 최종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아직도 꿈만 같아요. 제가 중앙부처의 공무원이 된다는 게…." 책을 읽던 아이들이 아우성이다. "선생님 그럼 독서교실은 누가 해요?" 한씨의 얼굴에서 함박웃음이 터진다. 아이들을 보려고 돌아선 한씨의 바지 뒷주머니에는 커다란 돋보기가 꽂혀 있었다.
"말 그대로 눈 앞이 깜깜했죠." 한씨가 시력을 잃은 것은 2001년 10월 초. 부산의 모 사단에서 통신병으로 근무하던 중 갑자기 통신 암호문서의 글자가 보이지 않게 됐다.
며칠 만에 내무반에서 고참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급속히 시력이 떨어졌다. 군 병원에서는 원인을 찾지 못했다. 서울대병원의 진단 결과는 '레버 시신경증'. 안구에는 이상이 없고 시신경 세포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시력을 잃는 희귀병이다. 그 해 12월 의병 제대한 한씨는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한씨 부모는 모두 장애인이다. 아버지 한명학(59)씨는 청각장애인 3급, 어머니 박영옥(53)씨는 지체장애 4급. 어려서부터 가난을 이고 살았다.
어머니는 빌딩 미화원, 아버지는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하고, 한씨도 중학교 때부터 주차 보조 등 아르바이트를 뛰었지만 다 합쳐 한 달에 100만원 벌기도 힘들었다. 아들에게 온 희망을 걸었던 부모에게 한씨의 발병 소식은 청천벽력이었다.
부모는 아들 치료에 모든 걸 걸었다. 어렵게 장만했던 집(성남 태평동)마저 팔고 1,500만원짜리 지하셋방으로 옮겼다. 다행히 황정민 서울대의대 교수의 치료 덕분에 한씨의 시력은 사물의 형태를 알아볼 정도로 호전됐다. 한씨의 도전은 다시 시작됐다.
대학(강남대)와 성남시에서 장학금을 받아 복학한 한씨는 전공(문헌정보학과)을 살려 도서관 사서 자격증을 땄다.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획득했다. "과연 직장을 얻을 수 있을까?" 회의가 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2006년 10월 이천의 한 복지시설에서 생활지도교사로 첫 발을 내디딘 한씨는 올해 5월에는 장호원초교 도서실 사서로 옮겼다. 그의 꿈은 '장애인들을 위한 사서'로 한 발 더 나아갔다. 어떻게? 답은 공무원이 되는 것이었다.
공공도서관에는 장애인을 위한 문자확대기를 갖춰야 하고, 이를 운영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씨는 학교 앞에 자취방을 얻어 퇴근 후엔 내년에 있을 일반 공무원 9급 시험 준비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9월 장애인 특채 소식을 접하고 지원, 39대1의 경쟁률을 뚫고 9급 사서직으로 합격했다.
"희망과 포기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예요. 포기하지 않으면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한씨는 부모님 다음으로는, 서로에게 힘이 돼주는 시각 장애인 친구들이 가장 기뻐해줄 거라고 했다.
한씨는 그의 바람대로 국립중앙도서관 사서가 돼 도서자료 조사ㆍ연구와 표준화 등 업무를 맡게 된다. 새 출발선에 선 그는 "앞으로 다가올 삶에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말했다.
이번 중증장애인 특채에는 한씨와 함께 지체장애 8명 등 모두 18명이 합격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현재 감사원이 중증장애인 특채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며 "앞으로 각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장애인 특채가 확산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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