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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야쿠르트 아줌마' 이옥희·이순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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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야쿠르트 아줌마' 이옥희·이순자씨

입력
2008.12.2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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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새콤한 녀석은 난쟁이(65㎖)다. 마시고 마셔도 허기지다. 그래서 얼굴을 손톱으로 흠집만 내거나 밑을 이로 뜯어 쪽쪽 빨아 마셨다. 꽁꽁 얼려먹고 심지어 밥에 말아먹기도 했다. 엄마는 그 아까운 놈을 얼굴에 발랐다. 마사지하는 엄마가 미웠다. 노란 아줌마가 샛노란 웃음 가득 노란 수레를 밀고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마지막 한 방울을 정성스레 핥는다.'

30~40대라면 유년의 창고에 들어있을 법한 기억 한 토막. 별의별 음료가 넘치는 요즘과 달리 1970~80년대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당시 아이들의 입맛을 훔친 음료는 단연 유산균발효유 '야쿠르트'(YAKULT). 오죽하면 "없어서 못 팔고, 달랄까 봐 숨기도" 했단다.

인기는 아직 녹슬지않았다. '국민발효유'라는 업체(한국야쿠르트)의 자화자찬이 거슬리지않을 정도. 국내 식음료 단일브랜드사상 첫 기록인 '누적판매량 400억병 돌파'(출시 36년11개월만)라는 타이틀을 굳이 끄집어낼 필요도 없다. 아직도 정식 보통명사(요구르트ㆍyoghurt)와 제품명(야쿠르트)을 헷갈리는 이들이 많으니까.

녀석의 영광 뒤엔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엄마 같은 존재가 있다. 탄생(71년 8월)과 더불어 지금껏 동고동락하는 '야쿠르트 아줌마'들이다. 25년차 이옥희(54ㆍ청담점), 19년차 이순자(53ㆍ역삼점)씨를 만났다.

"신발은 절대 벗지 않는다"

처음엔 가난이 죄였다. 쥐꼬리만한 남편 월급으론 시부모 봉양에, 아이들 육아까지 감당이 안됐다. 동료들 사정도 비슷했다. "몰래"(이순자), "겨우 허락 얻어"(이옥희) 교육을 받은 뒤 새벽 어스름에 나섰다. 주부취업이 지금보다 훨씬 어렵던 시절, 20대1의 경쟁을 뚫고 6개월이상 기다려 꿰찬 자리였다. 누가 뭐래도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세상은 삐딱했다. "아줌마 남편은 도대체 뭐하길래 꼭두새벽에 그 무거운 걸(배달용 손수레) 끌고 다니게 해, 쯧쯧", "밖에 내놓은 여자야, 흐흐." 자존심 상하는 짓궂고 무례한 비아냥거림에 늘 눈물이 쏟아졌고,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눈시울이 뜨겁다.

심지어 치근덕대는 몹쓸 사내들도 있었다. 오죽하면 "젊은 여성이 여기저기 다녀야 하니까 오해나 나쁜 일을 겪지않기 위해 '절대 운동화는 안 벗는다'는 업무철칙도 있었다"(이순자)고 했다. 초창기엔 숫기가 없어 수금도, 새 고객확보도 어려웠던 터라 몸이라도 아프면 관두고 싶은 마음이 울컥 들었다.

집에 와도 편치 않았다. 몸이 피곤하다 보니 집안일은 흐트러지고 식구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남편이 자고 있으면 발로 툭툭 차며"(이옥희) 그만 두라는 압력을 가했고, "안 그래도 반대하는 시어머니의 친구는 속도 모르고 '너네 며느리가 더 말랐네'라며"(이순자) '말리는 시누이'역할을 했다. 아이들은 또래들이 오면 "창피하다"며 방에 걸린 엄마의 노란 유니폼을 쏜살같이 베란다에 숨기곤 했다.

당시엔 돈이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84년 남편이 매달 12만원 정도 받을 때, 제 첫 월급은 15만6,000원, 조금 있으니까 30만원이 됐어요. 무조건 시부모님한테 드려서 이해를 구했어요."(이옥희) "저축하는 기분, 그 보람으로 일했죠."(이순자)

'움직이는 판매점', 가정전달판매의 효시로 불리는 야쿠르트 아줌마는 평균 마진이 25%정도. 야쿠르트 1병(150원)을 팔면 36원(24%)이 남는다. 현재 둘의 월 평균수입은 150만~200만원, 야쿠르트를 매달 무려 4만2,000~5만6,000개가량 판다는 얘기다.

물론 단순계산은 무리가 있다. 야쿠르트뿐 아니라 12종류를 취급하고, 최근 주력은 단가가 비싼 제품(예컨대 '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둘은 "몇 개 파는지 계산하려고 들면 조급증에 걸려 일을 못한다"고 했다. "하루에 1,800개를 팔고도 모자라 손님을 피해 도망 다닌 적"(이옥희)도 있지만 "애써 노력한들 팔기도 전에 문전박대를 당하기"(이순자)도 하니까.

"정말 값진 건 돈이 아니었다."

그렇게 얼마나 벌었을까. 둘은 한 목소리로 "내 손으로 집을 장만했다"고 자랑한다. 집값만 구입당시 2억원 이상 했단다. 시부모 봉양하고 아이들도 번듯이 키웠노라고 했다. 길이 7.4㎝, 용량 65㎖밖에 안 되는 녀석들을 팔고 팔아 태산을 이룬 셈. 부인, 엄마, 며느리, 아직은 차별이 존재하는 이땅의 여성인력으로 당당하게 살았다고 자부해도 한 점 부끄럼이 없겠다.

그러나 둘은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삯'은 수단일 뿐 정말 값진 건 '삶'이라는 것. "장사가 아니라 활기찬 인생, 긍정적인 마인드, 세상을 보는 넓은 시야를 덤으로 벌었고"(이옥희), "각계각층의 살아가는 얘기와 지혜, 유용한 각종 정보를 얻는다"(이순자)고 했다. 새벽일인 탓에 힘들지만 남보다 일찍 퇴근(오후 1~2시)할 수 있어 여가(탁구 수영 요가)도 맘껏 즐길 수 있다.

세상 인심도 달라졌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격려하는 사람, 손수레를 끌어주는 아이들, 수년간 단골로 지낸 덕에 속앓이도 솔직하게 털어놓는 사장님들, 음주 다음날 뭘 마셔야 하는지 묻는 회사원들이 다 그들의 재산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스스럼없이 대하다 보니 남편과 자녀 등 식구들과의 대화도 한결 편하다.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나섰던 새벽길이 경제적 안정뿐 아니라 행복한 황혼을 보장한 셈. 성실과 신뢰, 무엇보다 환환 미소를 놓지않은 덕이다. 회사도 지속적으로 친절교육을 위한 투자와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둘은 "몸이 아프다가도 노란 유니폼을 입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낫는다"(이순자)고 했다. 사명감이 몸에 밴 탓이리라.

'녹즙 아줌마' 같은 위협적인 경쟁자도 생겼고, 가끔 힘에 부칠 때도 있다. "빗물 줄줄 흘리게 왜 들어와" 하고 비오는 날 타박하는 건물 경비원이 서운하고, 누가 장난치려고 손수레를 몰래 숨기기라도 하면 화들짝 놀란다. 조금만 배려하면 7㎏이 넘는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짐이 좀더 가벼워질 것을.

▦야쿠르트 아줌마의 프로필(2008년 현재)

-숫자: 47명(1971년 8월)→1만3,500여명

-호칭: 여사님(존중의 의미)

-나이: 평균 46.3세(미혼자는 없음)

-활동: 평균 7년9개월(25년 근속자 300여명)

-수입: 월 평균 150만원

-일과: 오전 4시(기상)→6시(출근)→10시(배달완료)→11시(새 고객 찾기)→오후 1시(퇴근)

-판매물량: 하루 평균 500병(약 23만원 매출)

-장비: 노란 유니폼, 손수레(최근엔 전동카) 그리고 환한 미소

-자랑: 1인3역(슬기로운 아내, 장한 어머니, 신뢰 받는 판매점) 완벽 소화

-라이벌: 녹즙 아줌마(한 구역에 여러 명이 오가니까)

-봉사: 사랑의 김장나누기, 사랑의 떡국 나누기, 봄맞이 희망의 대청소 등

-꿈: 단순 배달에서 '건강관리 컨설턴트'로의 변신

-부탁: "손수레 숨기지 마세요" "비 온다고 문전박대 마세요" "인사 좀 받아주세요" "통제구역이 너무 많아요, 살짝 봐주세요"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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