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법원의 첫 존엄사 허용 판결에 불복, 2심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법원에 상고하는 '비약상고'(飛躍上告)를 하기로 17일 결정했다.
병원은 원고 측이 동의하지 않아 비약상고가 이뤄지지 못하면 항소 절차를 밟기로 해, 어느 쪽이든 존엄사 허용을 둘러싼 법정 공방과 사회적 논란이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세브란스병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존엄사에 대한 기준을 담은 법률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환자의 연명 치료를 중단하려면 대법원의 판단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항소심을 거칠 경우 환자와 보호자의 고통이 길어질 것을 우려해 항소 없이 바로 대법원의 판단을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비약상고가 성립하려면 원고 측의 동의가 필요하다. 대법원의 상고심은 사실관계를 다투지 않고 법리적 판단만 하기 때문이다.
원고인 환자 가족으로부터 결정권을 위임 받은 변호인들은 이날까지 비약상고에 대한 동의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신현호 변호사는 "환자 측 변호인 4명 중 2명은 비약상고를 받아들이자고 했지만 나머지 2명은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항소장 접수 시한인 18일까지는 변호인들간 논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박창일 연세대 의료원장은 "원고 측이 병원의 결정 배경을 이해하고 비약상고에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그렇지 못하면 항소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항소심을 거칠 경우 환자의 회복 가능성 등 사실관계를 놓고 다시 공방이 이어질 수 있다.
병원은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신중하겠다는 입장이다. 병원은 2004년 대법원이 환자 보호자의 요구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의사에게 살인죄를 적용한 선례에 주목하고 있다.
박 의료원장은 "살인죄가 성립하지 않으려면 사망시기가 임박해야 하는데 이번 판결에는 사망시기에 대한 언급 없이 인간의 존엄성만을 근거로 존엄사를 허용해 기존 판례에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서부지법은 지난달 28일 식물인간 상태인 김모(75ㆍ여)씨의 인공호흡기 사용을 중단해 달라며 자녀들이 병원과 담당 의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평소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고 싶다는 환자 본인의 뜻에 따라 호흡기를 제거하라"고 결정했다.
김씨는 지난 2월 중순께 폐암이 의심돼 기관지경 시술을 받던 중 과다출혈로 심장이 일시적으로 멈췄다. 이로 인해 저산소성 뇌 손상을 입고 10개월째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연명하고 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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