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 안 뽑아도 전혀 지장 없어요."
15일 경기 화성시 한국농업대학교 인근 밭. 3.6m 길이의 무인 헬리콥터가 굉음을 내며 솟아올랐다. 64㎏짜리 왜소한 체구가 내뿜는 소리치고는 제법 귓전을 울린다. 지상 10여m까지 떠올랐던 헬기는 차츰 고도를 낮춘 뒤 통 안에 담긴 비료를 쏟아내며 이랑을 따라 날렵하게 비행했다.
1,000여㎡의 밭에 비료를 뿌리는데 걸린 시간은 1분이 채 안 걸렸다. 주위에 전봇대가 있었지만 소형인데다 낮게 날기 때문에 비행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
무인 헬기가 노령화에 시달리는 농촌의 '해결사'로 각광 받고 있다.
농업용 무인 헬기는 2003년 처음으로 1대가 도입된 후 2005년 15대, 올해 50대로 늘어났다. 5년 만에 무려 50배가 증가한 수치다. 대당 가격이 2억원에 달하는데도 구매가 쇄도하는 것은 그만큼 농촌 인력 공동화가 심각하다는 증거다.
무인 헬기는 농약이나 비료, 영양제 등을 살포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낮게 날다 보니 정확도가 높고, 농약이 흩어져 남의 애꿎은 유기농 논밭을 망치는 일도 없다. 일반 헬기가 10m 이상을 떠서 살포하는 것과 달리 무인 헬기는 3, 4m 상공에서 표적에 발사하듯 뿌리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비용 대비 효과도 만점이다. 무인 헬기는 한 회 비행(12∼13분)에 2㏊, 하루 50∼60㏊를 작업할 수 있다. 무인 헬기를 보유한 농협에서 받는 작업비용은 3.3㎡(1평) 당 20∼25원으로, 1㏊(3,000평)에는 6만∼7만5,000원 정도가 든다.
사람을 써서 작업할 경우 10만원 안팎은 줘야 한다. 더구나 농번기 때는 사람을 구할래야 구할 수도 없고, 농약 중독을 우려해 갈수록 농약 살포 일을 꺼리는 추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인 헬기는 효자나 다름없다.
충남 서산 대산농협 정성훈(38) 대리는 "농촌에 농약을 칠 인력이 아예 없는데다 행여 구하더라도 추가 수당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에 비해 무인 헬기는 짧은 시간에 대규모 면적을 방제할 수 있어 인기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무인 헬기의 장점은 더 있다. 바로 신속한 대응이다. 장마나 태풍 끝물에 갑자기 병충해가 창궐하더라도 무인 헬기가 있으면 하루나 이틀 만에 방제가 가능하다. 또 정확하게 방제를 하다 보니 약품이나 약제 비용도 30∼40% 절감할 수 있다.
이 같은 장점 때문에 이미 2대의 무인 헬기를 보유한 충북 진천의 문백농협은 1대를 추가 구매할 예정이고, 전북 김제 백산농협도 추가 구매를 계획 중이다.
백산농협의 안기수(34) 조종사는 "무인 헬기는 GPS를 통한 자세 제어와 자동착륙 시스템 등을 갖춰 장난감 헬기보다 조종이 쉽다"면서 "면적이 넓을수록 비용이 싸지므로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농촌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완해야 할 점도 적지 않다. 먼저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는 무인 헬기는 거의 다 일본 제품이다. 국내 일부 기업도 생산하고 있지만 외국 엔진을 수입하거나, 공랭식 엔진으로 비행 능력이 떨어져 경쟁에서 밀리는 실정이다.
또 일정 기간이 지나면 부품을 교체해야 하고 보험료, 오일, 연료비 등도 적잖이 부담돼 상업적 이용보다는 대부분 농협 단위로 구매가 이뤄지고 있다.
3, 4㏊ 이상이 돼야 헬기가 출동할 수 있는 것도 영세농들이 많은 국내 여건상 개선해야 할 과제다.
내년 무인 헬기 관련 정규과정을 신설할 예정인 한국농업대의 김양식 학장은 "무인 헬기 의존도가 높은 일본처럼 우리도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헬기 이용이 늘 전망"이라면서 "농업이 첨단화 하면 젊은이들을 농촌으로 유인할 수도 있어 실업난 해소와 도농 균형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글·사진=이범구 기자 gogu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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