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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다시, 길을 떠나다] <6> 지휘자 금난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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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다시, 길을 떠나다] <6> 지휘자 금난새

입력
2008.12.17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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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음악계서 도움없이도 생존, 이것이 내 자산"서비스는 뒷전 지원타령만 하는 단체 많아문화는 보편성·사회의 기호도 염두에 둬야쉽고, 즐겁고, 행복감 주는 클래식이 목표

"나는 대한민국의 음악가 중 남의 힘을 빌리지 않은 유일한 음악가다."

1977년 카라얀 콩쿠르에서 '마탄의 사수' 서곡으로 3위에 입상한 일은 당시로서는 큰 사건이었지만, 돌아보면 작은 출발이었다. "중요한 것은 청중에게 행복감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안 들면 기업에서 계속 콘서트 후원하겠느냐?" 금난새(61ㆍ유라시안필,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예술감독)씨의 자부는 단단한 지반 위에 서 있다.

국내의 클래식 생산ㆍ소비 관행에 일련의 충격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예외적이다. 바깥에서 보는 시선이 그런 만큼, 본인의 자기 인식 역시 그렇다.

국내 최초로 지휘자가 해설자로 등장해 전석 매진을 기록한 1993~99년의 '청소년 음악회'는 작은 예다. 이후 '굿모닝 콘서트' '도서관 음악회' '해설이 있는 오페라' '찾아가는 음악회' 등 그는 서울과 지방을 넘나드는 활동을 해왔다.

2005년부터 그가 펼치고 있는 실내악 축제 '제주 뮤직 아일 페스티벌'은 제주도를 고품격 실내악의 고향으로 만들었고, 2007년부터 열고 있는 '무주 페스티벌&아카데미'는 솔리스트 양성 일변도의 클래식계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다음은 그가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한 것은 전례 없다"며 한 말들이다

- TV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주인공 강마에가 당신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도 하는데.

"사실 너무 바빠서 한 번도 못 봤다. 최근 전해 들은 바로는, 드라마에 유라시안필을 연상케 하는 에피소드가 몇 개 있었다고들 하더라. 겉보기는 정상적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괴짜인 내 모습과 비슷했을 수도 있겠다. 정규 연주장을 벗어나 로비 연주회를 추진할 때의 이야기가 드라마에 나온 듯하다."

- 안정된 KBS교향악단 지휘를 마다하고 수원시향에 간 것부터가 어찌 보면 괴짜 행동 아닌가.

"당시 1년에 10회 연주도 안하던, 존재감이 없던 수원필을 수원갈비보다 유명하게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수원시향을 택한 것은 나의 기질 때문이다. 나로 인해 시시한 단체가 건전하고 좋은 단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매달린 것이다.

내가 내 힘으로 커 온 과정이 그랬다. 지휘자는 여러 오케스트라를 가질 수 있다. 수원시향에서 마침 SOS를 보내와 '도와주겠다'고 했더니 KBS는 안된다더라. 우리가 월급 주는데 왜 딴 데 가느냐는 것이었다."

- 더욱이 KBS의 경우는 전임 아니었나.

"교향악단 단원들은 모두 레슨, 강의한다. 오케스트라 활동에 빈 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지휘만 했다. 다른 오케스트라 맡는 것은 당연하다. KBS 같은 경우는 객원ㆍ외부 지휘자 다 있다. 내게 주어진 것은 3분의 1인 셈이다. 나머지 60~70%는 다른 오케스트라 지휘해야 하는 것 아니냐."

- 1999년까지 수원시향 지휘, 2000년 유라시안필 창단(음악감독 겸 상임지휘), 2006년 경기필하모닉 지휘 등 운신이 눈부시다. 유라시안필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나.

"수원시향을 그만두고 진짜 내 오케스트라를 갖고 싶었다. 수원시향을 유명하게 만들었으나 결국은 제도권이었다. 벤처(여기서의 벤처란 모험 혹은 투기적 자본이라는 공격성보다 '자립'이란 의미가 더 강하다) 오케스트라의 꿈이 응결된 것이 유라시안필이다."

- 외부의 지원은 없는가.

"서울시향은 1년 예산으로 130억원을, KBS는 95억원을 받는데 우리는 1원도 지원 안 받는다. 그러나 더 많이 연주하고, 더 많은 청중에 서비스한다. 이렇다면 국가는 어느 단체에 지원해야 하는가. 나의 재산은 도움 없이도 꾸려나가는 독립심이다.

- 당신이 생각하는 일반인의 문화 향유 기준이 있을텐데.

"이른바 명작을 들어볼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건강한 사회라면 이상한, 별난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말러나 브루크너의 전곡을 진짜로 좋아하고 이해하는 사람은 0.0001%도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전곡 연주 욕심은 순전히 아마추어리즘이다. 연습을 많이 해서 이뤄내는 것이 아마추어리즘이다. 프로라면 말러 전곡을 한 달 안에 연주해낼 수 있어야 한다. 요청이 들어오면 다 소화해내는 게 바로 프로 아닌가."

- 대중 지향적 행보만을 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렇다면 남이 이해 못 하는 것을 고집하는 것은 독단 아닌가? 세상에 필요한 음악을 해야 한다. 시장에 필요한 게 A인데, B를 고집하면 말이 되나? 우리 시장에 맞는 음악이 필요한 것이다. 소수만 이해하는 음악은 우리가 건강하고 문화적 수준이 높을 때만 가능하다."

- 그런 견해가 오히려 편견일 수도 있지 않은가.

"책도 이해될 수 있는 책을 번역해야 한다. 사람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우선 순위다. 윤이상의 음악, 백남준의 예술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 되겠는가? 독특한 문화란, 모든 분야가 건강할 때 필요한 것이다.

새로운 소리를 만든 작곡가들은 많다. 중요한 것은 문화가 소수의 기호만으로 되기에 앞서, 보편타당성과 사회의 기호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은 스탠더드한 곡들도 들어본 적 없는 나라다. 나는 연주회 가면 객석을 향해 이 곡을 들어본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본다. 0.1%만 안다더라."

- 그렇다고 당신이 정당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악기 자랑이 촌스럽듯, 전곡 연주회 같은 자랑도 촌스럽다. 중요한 점은 행복감을 주는 것이다. 우리 콘서트에 사람이 안 들면 기업에서 계속 후원하겠느냐. '청소년 음악회' '해설이 있는 오페라' '포스코 로비 콘서트' '캠퍼스 심포니 페스티벌' '마라톤 콘서트' 등은 일각에서 생각하듯 번스타인의 해설음악회를 모방한 게 아니다.

무엇보다 청중을 넓혀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나왔다. 한 예로 이제는 일반화된 12월 31일 콘서트를 봐라. 그 날은 대관하지 않는다는 관례도 그 같은 생각으로 내가 먼저 깼다. 지금은 모두 지휘자의 직접 해설 등 '금난새 패션'을 따라하지 않는가. 나는 지원 없이도, 척박한 음악계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 유라시안 필의 주안점은 어디에 있나.

"쉽고도 즐거운 클래식이 목표다. 그 정점에 전곡 연주 프로그램이 있다. 2000년에 두 달에 한 번꼴로 포스코 로비에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를 9차례 걸쳐 했다. 한 번 본 사람이 또 왔다. 차이코프스키, 브람스 전곡 연주회도 마찬가지였다."

- 한국의 음악가들과 소통이 적다는 비판도 있는데.

"비비 꼬인 사회의 부정적 인식에는 관심 없다. 너무 다르니까 적이 생길 수도 있다. 내가 하는 일 자체를, 우리 사회는 하나의 제안으로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 처음에는 말들이 많다가 따라하는 게 그래서가 아니냐. 자위로서의 음악은 않겠다. 그런 예술은 착각이다. 우리는 사람 오든 말든 연주만 하면 되는 그런 단체 아니다. 자금을 지원해 주면서 '너는 음악만 하라'는 그런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또 모르겠지만."

- 이 경제위기 속에서 클래식 음악은 어떻게 될까.

"100억원이 넘는 지원금이 적다며 울상인 단체가 있다. 그들이 맞다고 생각하는가? 사회는 그렇지 않다. 현실을 모르는 문화지상주의는 착각이다. 지금 보라. 연주장은 있는데, 연주할 단체는 없는 게 현실이다. 문 닫는 지방 음대가 요즘은 낯설지 않다. 고객의 눈높이에 맞춘 다채롭고도 신선한 프로젝트는 많이 숨어 있다."

인터뷰 후 작별인사 대신, 그가 고향 부산 사투리로 말했다. "그대로 써 주소." 그의 희망대로, 그대로 썼다. 인터뷰 중 그가 한 번,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적도 있다. 자신의 다양한 활동에 대한 일각의 비판을 떠올리는 대목에서 그는 "그렇다면 내가 슈퍼맨이라도 되란 말이냐"며 언성을 약간 높였다.

문화 CEO이자 실험가

새로운 시도·실황음반 꾸준히

금난새씨는 현실이라는 텍스트와 다양한 접점을 갖고 있다. 기획자가 차려주는 무대에 올라가 연주라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거개의 음악인들과는 달리, 그는 자신의 예술이 어떤 식으로 존재해야 하는지 항상 실험한다.

2006년 '한국 CEO 그랑프리' 문화예술 부문 수상자로 선임된 후 그에게는 '문화의 CEO'라는 별명이 자연스레 붙게 됐다.

최근 DVD로 발매된 경기필과의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연주회 실황(4월 21일 예술의전당)은 그의 소통 방식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프랑스의 화가 제라르 에코노무스가 55분의 연주 시간 동안 무대 뒤에 설치된 10x2m의 캔버스에 즉흥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병행한 것이다. 네티즌들은 "새로운 시도에 즐겁게 도전하는 금난새의 무대라서 가능했을 것"이라는 평으로 반겼다.

정규 클래식 공연장의 틀을 벗어난 이 같은 행보 덕에 그는 CD 등의 매체와 친숙할 수밖에 없다. 콘서트가 그가 대중과 만나는 한 축이라면 음반은 또 다른 축이다.

1989년 KBS교향악단의 연주로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등을 스튜디오 녹음이나 실황녹음으로 발매한 이래, 그는 '피터와 늑대' '카르멘 조곡' 등 음반 발표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제주도에서 2005년 이래 해오고 있는 국제 실내악 축제인 '제주 뮤직 아일 페스티벌'의 실황 음반들은 정상급 연주의 현장을 스튜디오 녹음 음질로 재생, 라이브 클래식의 맛을 선사한다.

5년 전부터 그가 한 달에 한 번 꼴로 이화여대 연세대 고려대 계명대 전북대 등 전국의 대학 순례 연주회를 해 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CJ의 후원으로 사관학교, 사법연수원 등도 순회한다.

장병욱기자 aje@hk.c.kr

사진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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