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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성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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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성에꽃

입력
2008.12.17 06:07
0 0

최두석

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 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 다니며 보고

다시 꽃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 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버스 안이 낭떠러지다. 출입구 쪽 계단에 간신히 발 하나를 걸치고, 틈을 보아 착지를 하지 못한 나머지 발을 조심스레 올려놓는다. 이 지긋지긋한 출근길을 언제나 면하려나.

간밤에 송년회라도 갔다 왔는지 옆에서는 술 냄새와 삼겹살 냄새가 난다.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잠든 사람, 벨 소리에 화다닥 눈을 떴다 도로 감는 사람, 버스 손잡이에 매달려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 사이에서 양복 옷주름처럼 이마가 저절로 찡그려진다. 그런데, 지긋지긋한 이 버스 속에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막힌 아름다움'이 있다. 혹한 속에 움츠린 몸을 부비면서 피워낸 꽃, 고단하게 절은 몸속의 가난한 체온들이 가꾼 화원, 성에꽃 전시장이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유리창에 나도 따라 비린 열기와 입김을 더해본다. 하얀 보드판처럼 걸린 창문 위에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이름들을 적어본다.

찡그린 옷주름을 몇 번 더 찡그린다면 어떠랴. 내 숨결 위로 더해지는 숨결들과 함께 혹한에 맞서며 후끈 달아오를 수 있다면, 그 열기로 생생해지는 꽃을 볼 수 있다면! 아침마다 치르는 이 지긋지긋함이야말로 나를 구원하는 길이 아닐까.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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