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유령 도시지, 어디 사람 사는 동네로 보입니까? 주변에 사람들이 보여요? 문 닫고 있는 곳이 더 많잖아요. 종업원 6명을 모두 내보내고, 집에 있는 마누라와 자식새끼 데려다 장사하는 속마음을 누가 알아줄까요? 에이, 젠장…."
13일 오후 각종 포장 원자재 공급과 특수 인쇄 등을 전문으로 하는 도ㆍ소매 유통상가 3,000여개가 밀집한 서울 을지로4가 방산시장. 여기에서 폴리염화비닐(PVC) 포장재를 취급하는 동창산업 강태윤(50) 사장은 요즘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살아 남기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때려 치우고 싶은 맘이야 굴뚝 같지만, 가게를 내놓으면 뭐 합니까?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것을…."
영세 소상공인들이 모여 있는 방산시장이 무너지고 있다. 한 때 국내 최대 규모의 포장재 전문상가로 번창했던 곳이지만, 금융위기와 더불어 찾아온 내수 침체로 존립 기반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와 설 연휴, 졸업 및 입학 시즌이 집중돼 있는 겨울철은 선물 교환이 많은 시기로 한해 농사를 결정짓는 최대 성수기이지만, 요즘 연말 특수는 고사하고 예년에 비해 70% 가까이 떨어진 매출 탓에 줄폐업이 속출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방산시장번영회에 따르면 전체 입주 유통상가 중 20% 이상이 이미 폐업 했거나 전업을 준비하고 있다. 실제 방산시장 곳곳에는 '점포 임대'와 '임대 문의' 등의 안내문이 내걸린 채 문이 내려진 상가가 쉽게 눈에 띈다. 방산시장번영회 이정호(56) 회장은 "문을 닫는 업체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어, 시장에서 얼마나 빠져나가는지 알 수도 없다"며 "영업 중인 가게 중에도 이미 가게를 내놓거나 폐업을 준비하는 곳이 많다"고 전했다.
매출 급감으로 제때 내야 할 임대료조차 지불하지 못하고 은행 대출이나 사채 등으로 연명하는 가게가 태반인 탓이다. 방산시장 내 점포 임대료는 10평 기준 최고 월 800만~900만원에 달한다.
이처럼 소상공인들은 실물경제가 침체될 경우 가장 빨리 타격을 받는데도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게 현실이다. 최근의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책은 쏟아지고 있지만, 자영업자로 분류된 소상공인들을 위한 정부의 지원 방안은 크게 미흡하다.
중소기업연구원 전인우 박사는 "쓰러져가는 영세 소상공인들을 방치할 경우 우리 중소기업들의 건실한 성장을 담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안정을 위협하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며 "자금 지원을 포함한 중ㆍ장기적 차원의 구제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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