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3일 새벽, 쿠웨이트 북부의 미군 기지. 한국군 자이툰부대 1진 400여명이 탄 트럭 140여대가 시동을 걸었다. 국경 너머 파병지인 이라크 아르빌로 가는 여정은 1,115㎞. ‘파발마 작전’이 시작됐다. 이라크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3박4일 간의 여정은 적대세력이 언제 어디서 공격해올지 모르는 위험한 작전이기도 했다. 파발마 작전 종료 후 실시한 설문 결과, 작전에 참가한 장병의 70% 이상이 “작전 중 죽거나 부상당할 수 있다”는 대답을 내놓았을 정도였다.
그로부터 4년 3개월. 모래바람이 매서운 황량한 벌판에 짐을 풀었던 자이툰부대는 ‘이라크 평화재건 작전’을 무사히 마쳤다. 귀국은 20일께로 예정돼 있지만, 14일 전 병력이 무사히 쿠웨이트로 빠져나오면서 사실상 이라크 철군은 마무리됐다.
파병 결정 당시 미국의 압력에 밀려 “소중한 아들딸을 사지로 몰아넣는다”는 반대여론이 들끓으면서 국론분열, 정쟁 격화 등 우여곡절도 겪었지만, 자이툰부대는 성공적인 활동으로 우려를 불식시켰다. “사막에 무궁화꽃을 피웠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으로 많다.
미군 등 각국 동맹군들 사이에 ‘자이툰 따라잡기’ 열풍이 불 정도로 자이툰부대의 활동은 모범적이었다. 실제로 자이툰 부대가 운영했던 문맹자 교실은 다른 동맹군 부대의 벤치마킹 대상이 돼 지금은 이라크 전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다. 자이툰부대는 주로 여성인 문맹자 7,200여명에게 쿠르드어를 가르쳤다.
2005년 5월부터 지난달 4일까지 기술교육대를 운영, 재건 복구에 필수적인 중장비 및 특수차량 운전과 자동차, 발전기, 가전제품 정비, 컴퓨터, 제빵 등 7개 과정에 걸쳐 16개 기수 2,299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자이툰의 기술교육대는 평균 입학 경쟁률이 7대 1에 이를 정도로 최고의 기술교육기관으로 이름을 날렸다. 자이툰부대 민사협조본부장인 송희섭 대령은 “한국군을 배우라는 지시를 받고 부대로 찾아오는 각국 동맹군들을 안내하느라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입해야 했다”고 전했다.
2004년 11월27일 개원 후 4년 간 사랑의 인술을 펼친 자이툰병원은 현지 주민들로부터 ‘신이 내린 또 하나의 선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현지인 8만8,805명을 비롯해, 자이툰부대 장병과 동맹군 등 외래환자 13만2,027명과 2,212명의 입원환자, 1,773명의 수술 환자를 진료하는 숨가쁜 활동을 벌였다. 하루 평균 진료 환자가 130여명이었다. 또 격오지 마을을 대상으로 100여 차례나 순회 진료에 나서고 15만여점에 이르는 의료물자와 장비를 현지 병원과 의료기관에 무상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1일 열린 자이툰부대 임무 종료식에서 이라크 다국적군단의 로이드 오스틴 군단장은 “자이툰부대는 이라크 민사 작전과 재건 노력의 표준 모델을 제시했고 이라크 다른 지역에서도 이 만큼 할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어 줬다”며 “동맹군과 이라크군을 대표해 자이툰부대의 헌신과 프로 정신에 감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지인들은 이제 거리에서 자이툰부대를 만나면 ‘꾸리 꾸리 넘버원’(Korea Korea No.1)’이라는 말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20일께 귀국하는 자이툰부대의 철수 작전명은 ‘개선문 작전’이다. 총칼이 아닌, 삽과 청진기와 마음으로 얻어낸 개선이기에 더욱 뜻깊다.
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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