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내년 말까지는 고생문이 열렸다고 보면 됩니다. 2010년 1분기가 지나고 꽃피는 4월 정도에는 경기회복에 대한 자신감이 살아나지 않을까 합니다."
세계적인 가전 메이커인 필립스에서 2006년 9월 분리된 필립스반도체부문(PS)인 NXP반도체 대표 이사인 신박제(64ㆍ사진) 회장은 15일 글로벌 금융위기로 침체국면에 빠진 경기가 다시 회복되는 시점을 2010년 1분기 이후로 그 선을 그었다. 서울 상공회의소 부회장이자 한국외국기업협회(FORCA)회장, 대한하키협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겸임하고 있는 신 회장은 필립스 코리아의 회장 등을 거치며 최고경영자(CEO)로만 올해로 16년째를 맞고 있다. 한마디로 직업이 CEO인 장수 전문경영인이다.
지난 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NXP반도체 긴급 글로벌 CEO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신 회장은 "140명의 각 지역 CEO들이 3일간 머리를 맞대고 생존전략을 강구하는 자리였다"며 "유럽과 동남아지역은 우리가 느끼는 것 이상의 위기의식이 높았고 긴축경영과 구조조정을 통해 내년 한 해를 어떤 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2만5,000개 이상의 특허를 보유한 미디어 테크놀러지 분야의 리더인 NXP는 필립스가 50여년 전에 만든 세계 10대 반도체 회사. NXP의 대표제품으로는 소비자 및 컴퓨팅 전원장치에 사용되는 고 에너지효율 IC 제품군 그린칩 (GreenChip)등이 있다.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에 본사를 두고 세계 20국가에 3만7,0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63억 달러로 휴대폰과 퍼스널미디어플레이어, TV, 셋톱박스, ID 애플리케이션, 차량 등 다양한 시스템 솔루션 및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있다.
신 회장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당분간은 반도체 업황 자체가 어두운 상황인데다 셋톱박스와 모바일 등 기술력에 선행투자하며 반도체 업황을 이끌어가는 세계적인 오퍼레이터 회사들이 불황에 투자와 사업추진을 일 순간 스톱하면서 상황은 최악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NXP는 올 9월부터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어 그나마 불황의 직격탄을 피할 수 있었고 특히 한국은 생산라인이 효율적으로 이뤄져 있어 구조조정 없이 내년에도 현상태로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내년 사업계획에 대한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난감한 속내를 털어 놓으며 "내년에는 최대한 보수적인 사업 플랜으로 살아 남기 위해 비용절감과 긴축을 통해 몸집을 바짝 줄일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엔 전사적인 차원에서 꼭 필요한 해외출장이외에는 가지 않고 화상회의 대신 인터넷 전화회의를 할 만큼 긴축이 업무의 주요 키워드"라며 "우리나라 기업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하지만 NXP가 현금보유 규모가 많아 어쩌면 새로운 기술과 사업 가능성에 대한 신규투자가 이뤄질 수 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1년 전 외환위기 당시 필립스 코리아 회장이었던 신 회장은 필립스 그룹의 콜 본스트라 회장을 설득해 LG와 공동 투자해 LG필립스LCD 합작법인을 만든 성공사례를 상기시켰다.
그는 "환란직후 최고의 해외투자 유치 성과이기도 한 LG필립스 LCD 합작법인은 필립스와 LG에게 모두 윈-윈 전략이었다"며 "현재 필립스는 하이테크와 IT분야투자에서 멀어져 있어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고, NXP역시 반도체 외에 신 성장동력을 찾고 있는 입장이어서 제2의 투자기회를 한국에서 모색할 수 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외환위기 당시 투자유치 전도사였던 신 회장에게 외국기업협회장으로서 최근 정부의 해외투자 유치 노력을 평가해달라고 물었다.
그는 "모든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투자유치노력을 하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경쟁력 높은 전문화와 차별화가 없는 것이 다소 아쉽다"며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구호에 만 머물지 말고 정말로 정부 실무자들이 싱가포르와 홍콩에 직접 가서 보고 느껴야만 우리나라도 정말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쏟아지는 각종 규제개혁들 중에서 제대로 실행에 옮겨지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도 되돌아 봐야 하며 해묵은 과제인 노사문제도 결국 법과 질서를 준수해야 한다는 평범한 인식전환이 이뤄질 때 그 성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추진중인 경기부양책과 관련 "경기가 어려울수록 아파트 건설 보다는 토목공사 쪽이 더욱 나라 살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외자유치도 산발적이고 단기적인 것 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역별로 전문성을 살려 정부와 지자체, 기업이 함께 노력해야 참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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