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은 시장 자체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겪고 있는 금융위기가 그 신호입니다. 자유무역을 지지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사회와 국가의 개입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마르크스경제학자인 안와르 샤이크(63) 뉴욕 뉴스쿨대 교수가 방한, 심화되는 글로벌 경제위기의 미래와 세계적 불평등 문제에 대해 한국 학자들과 의견을 나눴다. 파키스탄 출신인 그는 자유무역 체제의 한계를 전문적으로 연구해 온 마르크스경제학 위기이론의 권위자다.
전지구적인 빈곤 확대와 분배의 불균형이 발생하는 원인을 거시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이론 틀을 마련한 것이 그의 업적. 특히 자유무역주의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리카르도의 비교우위론(경쟁력 있는 산업만 육성해 무역을 하면 양국이 모두 이익을 보게 된다는 이론)의 허구성을 실증적 방법으로 통박, 자유무역협정(FTA) 등 자본 위주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세력에게 이론적 논거를 제공해 왔다.
성공회대에서 12일 열린 강연에서 샤이크 교수는 글로벌 경제위기를 중심 테마로 자신의 이론을 소개하고 한국 연구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강연 뒤 이어진 토론은 국내 대표적 마르크스경제학자인 김수행(66)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주도로 이뤄졌다.
- 주류 경제학 이론(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이 학문적 허구성에도 불구하고 각국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을 지배하는 이유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은 위기-버블 파괴-균형이 반복되는 무질서를 무시한 채 질서만 강조한다. 그리고 세계는 여전히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맹신에 가려 완벽한 질서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의 진짜 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시장은 아주 강한 체제이지만, 혼돈과 무질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 세계화가 지금의 공황적 상황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 그리고 개발도상국, 후진국은 이 위기에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하는가.
"위기의 근본 원인은 자본주의 체제에 내재해 있다. 무역을 통한 균형과 완전고용이 가능하다는 단순 모델의 한계가 그것이다. 세계화는 위기를 악화시키긴 했지만, 이 위기가 세계화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개발도상국들은 발전을 위해 무역장벽을 없애고, 시장을 개방하고, 민영화를 촉진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하지만 자유무역 이론은 완전치 않고, 선진국도 자신들은 정작 철저히 자유무역 논리를 따른 적이 없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 현 위기가 각국의 사회복지 모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는가.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을 것이라 우려되는데.
"불황기에 사람들이 우파적 성향을 갖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복지국가에서 재분배는 임금노동자 계급 안에서 일어난다. 사회간접자본을 포함한 모든 복지의 재원은 부자나 기업이 아니라 노동자가 내고 스스로 그 혜택을 받는다. 또 대부분 자신이 낸 것보다 많이 받게 된다. 이 점을 명확히 인식시킨다면 복지 정책이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주노동자들도 복지 혜택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일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사실 이주노동자 문제는 복지의 분산보다 고용의 분산 측면에서 심각하다. 세계 노동인구의 3분의 1이 실업이나 과소고용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
- 월스트리트 모델이 파탄났다는 견해가 많다. 미국 경제가 현 위기를 버틸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미국의 헤게모니는 계속될 것인가.
"1954년에 갤브레이스가 <대폭락 1929> 을 통해 대공황을 분석하면서 '이런 위기가 다시 생길 수 있을까' 하고 물었다. 그는 '그렇게 바라지 않지만, 가능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말이 실현되고 있다고 느낀다. 안타깝게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닥치는 시기를 늦출 수는 있을 것이다. 대폭락>
미국의 헤게모니는 감퇴할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이 즐겨 취하는 전략이 전쟁인데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군사적 프로젝트의 비용은 너무 비싸졌고, 미국은 각국에 퍼져 있는 대사관을 방어하기도 힘들 것이다. 오바마는 수많은 실업자 때문에라도 노동 인텐시브 정책을 취할 것이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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