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자재로 형태를 변형시키는 사이보그가 등장한 영화 <터미네이터 2> 에서 볼 수 있었던 액체금속의 비밀을 한국 대학원생이 한 꺼풀 벗기는데 성공했다. 터미네이터>
고려대 신소재공학과 석사과정 박경원(24ㆍ여)씨는 흔히 액체금속으로 불리는 비정질 합금이 항복강도(재료가 영구적으로 변형되기 시작하는 힘의 세기) 이하에서도 영구적인 변형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14일 고려대에 따르면 박씨의 연구결과는 재료 분야의 국제 저명 학술지인 ‘악타 메터리얼리어(Acta Materialia)’ 최근호에 게재됐다.
비정질 합금도 결정금속과 마찬가지로 항복강도 이하에서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통념을 깬 이번 연구결과에 해외 석학들도 주목하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저명 이론물리학자인 마이클 포크 교수는 최근 고려대를 찾아 박씨와 공동연구를 제안하기도 했다.
비정질 합금은 기존 금속보다 2,3배 단단해 철판을 뚫는 철갑탄이나 우주선 집진기처럼 특수 목적에 사용된다. 박씨를 지도한 고려대 이재철(48)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비정질 합금의 새로운 가공법 및 고에너지 방사선 센서로서의 응용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박씨가 액체금속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 것은 학부 3학년이던 2005년. 원자들의 배열구조를 묘사하기 위해 청계천 공구상가에서 구입한 쇠구슬만 4만개에 달했다. 겨울에 실험을 할 때면 쇠구슬 세척액 때문에 손등이 갈라지기 일쑤였다. 다른 학생들은 보통 한번에 10번 정도 하는 원자 조성 실험도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50번 이상씩 매달렸다. 박씨는 “연구라는 것이 정답이 없기 때문에 좌절할 때도 많았지만 실패를 교훈삼아 포기하지 않고 연구했다”고 말했다.
고려대 신소재학과를 수석 졸업한 박씨는 발표 논문 수도 국내 ‘수석’ 급이다. 학부 4학년 때 대한금속재료학회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만 23편에 달한다. 이 중 해외 저널이 17건, 주 저자로 참여한 것만 15회다. 독일 일본 등에서 열린 학회 발표에도 65차례나 참가했다. 학회 수상 경력도 4차례다.
박씨는 연구를 시작한 이후 한 학기에 2,3회씩은 암벽 등반에 나선다. 박씨는 “실험에 실패하면 위축될 때도 적지 않은데 암벽을 타다 보면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암벽 등반 애호가답게 박씨는 마그네슘 합금을 이용한 등산용 8자 하강기 등 3건의 특허를 보유했거나 출원 중이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이공계 전공 여학생 수요는 늘어날 것”이라는 박씨는 내년 2월 졸업 후 국책연구소에서 액체금속 등에 관한 연구를 계속할 계획이다.
장재용 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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