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 하원 초선의원 시절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신문에 한인사회에 대한 기사가 크게 실린 적이 있다. 한인들을 가장 급작스레 늘어난 새 이민자로 소개하면서, 여기저기 한글로 된 간판 사진을 곁들여 눈부시게 발전한 한인타운의 모습을 전하는 내용이었다. 혹시 내 이름이 어디에 있지 않나 부지런히 살폈지만 다행히 보이지 않았다. 그 때만 해도 나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한인 관련 기사가 날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나에 대해 단 한번도 우호적인 내용의 기사를 게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찬찬히 기사를 읽어보니 초점은 새 이민법 발효 후 갑작스럽게 변한 올림픽가를 중심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한인 상점들을 소개하는 데 있었다. 그 중에 두 가지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하나는 한글로만 쓴 간판들. 한글을 전혀 모르는 미국인들에게 한글로만 간판을 쓰면 무엇을 파는 상점인지 어찌 알겠느냐며 한글 밑에 영어도 같이 써야 옳다는 지적이었다.
결국 이듬해 로스앤젤레스 시 의회에서 외국 언어로 된 간판은 환영하지만 반드시 그 밑에 영어도 함께 표기하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그렇지만 한인식당 간판은 정확히 번역하기가 힘든 경우가 많다. 가령 '흑염소탕 전문식당' 을 정확히 표현하기 어려워 그냥 'Restaurant (식당)' 이라고만 한 경우도 있다.
한번은 경찰이 뒤쫓던 좀도둑이 한인 식당으로 뛰어 들어가 뒷문으로 도망치는 바람에 도둑을 놓치고 그에 관한 보고서를 써야 했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식당간판을 한글로만 썼기 때문에 읽을 수가 없었고 지나가는 행인한테 물었더니 모두 "I don't know" 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식당 안에 들어가서 종업원한테 물으니 그 역시 영어로 번역하기가 어렵다고 대답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식당 간판에는 '한국의 옛 전통, 맛나는 추어탕 전문집' 이라고 써 있었다.
며칠 뒤 우연히 공식적인 자리에서 로스앤젤레스 시 의원을 만났는데 간판 얘기를 하면서 이중언어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다뤄야 하는 게 아니냐며 외국어 간판에 반드시 영어를 포함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해 달라고 했다. 나는 이에 대해 정중히 거절했던 기억이 난다. 식당을 허가한 각 지방자치단체가 결정할 문제지 연방법으로 다룰 사안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사의 또 다른 내용은 미국에 사는 자식들이 스폰서를 해 이민을 오게 된 한국 노인들의 얘기였다. 부모를 미국으로 이민 초청을 하려면 우선 한국에 이 노부모를 뒷바라지 할 직계가족이 없다는 점을 증명해야 하고, 둘째는 노부모가 미국에 있는 동안 모든 책임을 자식이 지겠다는 데에 서명을 해야 한다.
모든 책임이란 미국 사회에 재정적 짐이 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을 의미한다. 미국에선 65세가 되면 모든 건강보험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기 때문에 65세가 넘은 노인들에게는 미국 같은 천국이 없다. 65세가 넘으면 병원비, 의사진료비가 무료인데다 일을 할 수 없어 수입이 없으면 매달 일정한 생활비와 식용품 일체를 구입할 수 있도록 Food Stamp도 내준다. 심지어 택시도 그냥 탈 수 있게 쿠폰을 준다. 그러다 보니 새 이민법 통과 후 자식들을 따라온 노인들이 수만 명에 달했고 자연히 비리도 생겼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기사는 많은 한국 노인이 미국 정부의 보조금으로 생활하면서 1년에 몇번씩 밍크코트에 비싼 핸드백을 들고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이런 노인들의 자식들이 돈을 잘 버는 의사 등 전문직종에 종사하고, 대궐 같은 집에서 벤츠를 타고 다닌다고 고발했다. 이 때문에 한인타운이 한바탕 벌집을 쑤신 듯 어수선했다.
이 기사가 보도된 뒤 왜 미국인들이 열심히 일해 번 돈을 외국에서 온 노인들에게 써야 하느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유일한 1세 이민자인 내게 질문이 집중됐다. 이들의 말은 옳다. 일생을 벌어서 세금과 사회보장세를 꼬박꼬박 냈는데 공연히 이민법을 고쳐 미국에서 한 푼의 세금도 낸 일이 없는 노인들을 외국에서 (특히 한국에서) 대거 데려와 혈세를 낭비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이 문제가 워싱턴에서도 쟁점이 됐고, 이 사안이 거론될 때마다 동료 의원들은 전부 한국에서 온 이민자인 나를 쳐다 보는 것 같았다.
그 때가 1994년 10월께였다. 아니나 다를까 공화당 의원들이 이민법을 악용하는 이민자들에게 혜택을 중지하고 그 자식들을 처벌하는 내용의 법안을 상정했다. 당시 가장 깊이 연관된 이민자들이 주로 한국, 대만, 홍콩, 베트남 출신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내가 이 법에 어떻게 대응할지 눈을 부릅뜨고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참으로 입장이 곤란했다. 내 지역구는 백인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다른 동료 백인 공화당 의원들과 함?법안 통과에 앞장서야 할 텐데 그럴 수 없는 처지였다. 일생에 처음으로 나도 백인으로 태어났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다.
1995년 초, 불법이민에 대한 교정과 이민의 책임에 대한 법안을 통과 시키기 위한 기초작업을 할 때였다. 가만히 보니 공화당 의원들은 여전히 백인이 아닌 유색 인종들의 이민을 그다지 환영하지 않는 것 같았고, 민주당은 반대로 백인이 아닌 인종들의 이민을 환영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왜 그런가 물어보니 백인이 아닌 이민자들은 90% 이상이 민주당을 열렬히 지지하고 모금운동에도 열심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럼 나는 뭔가? 이래서 나에게 일본인 단체들이 백인 우월당인 공화당을 탈당하고 민주당에 가입하라고 공격했었단 말인가.
한인사회에서 벌어진 이민법 남용 사건들을 벌주는 공화당 법안에 백인 지역구를 대표하는 나는 민주당 편을 들어 반대표를 던져야 옳은가. 그러면 지역구의 백인들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영원한 미움의 대상이 되느냐 , 아니면 공화당원과 백인들이 대부분인 날 뽑아준 지역구민들을 배반하는 게 옳으냐? 내 지역구의 여론조사를 보니 아시아계 이민들 중 일부 이민법 남용자들을 벌주는 게 옳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고 비슷한 내용의 편지가 하루에도 몇백통씩 내 사무실로 쇄도했다. 거의가 현행 이민법의 결함을 개혁하는 게 옳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에는 지역구가 없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있다는 데, 정말이지 지역구가 없는 그들이 무척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