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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대가 도예가 윤광조 전시회/ 순수·고독·열정 자유를 빚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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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대가 도예가 윤광조 전시회/ 순수·고독·열정 자유를 빚어내다

입력
2008.12.17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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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홍익대 도예과를 다니다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서 군복무를 하던 21세의 윤광조씨는 운명처럼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1916~1984) 선생을 만났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과장이던 그에게 문서 심부름을 다니면서 도자기에 대한 궁금증을 묻곤 했던 것이다. 그와의 만남으로 윤씨는 우리것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고, 분청사기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윤씨는 분청사기의 매력은 자유로움이라고 말한다. "청자는 형태와 문양이 정돈돼있고, 비취색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죠. 백자 역시 유교 선비정신의 표현을 목표로 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있는 분청사기는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어요. 흙의 형태도 다양하고, 너무나 자유스럽죠. 거기서 현대미를 발견했습니다."

우리 전통 도예는 그저 흘러간 옛것에 불과하고, 일본의 현대 도예를 모방하는 것이 제일이라 여기던 시절이었다. 분청사기를 한다는 이유로 윤씨를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최순우 선생은 윤씨에게 든든한 정신적 지주였다.

1976년 신세계 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 때 '한국 도예가의 길'이라는 서문을 써줬을 뿐 아니라, '급월당(汲月堂)'이라는 당호를 지어주기도 했다. '물 속의 달을 길어 올릴 수 있는 작가'라는 뜻이었다. "1978년 경기도 광주의 산 속에 한옥을 짓고 작업장을 차렸을 때 찾아오셨어요. 하루종일 술을 드시다 갑자기 '윤군, 먹 갈아오게' 하시더니 글자를 써주셨습니다."

그날 이후 윤씨는 물 속에서 달을 길으려 했던 이백처럼, 자연에 묻혀 오직 도자기를 빚었다. 그리고 '현대 도예 전업작가 1호'라는 호칭을 얻었다. "학교에 자리잡거나 도자기 공방을 차리지 않고 작품만 한 선배는 없었어요. 평생 먹고 사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저 조금 먹고 조금 쓰고 빚을 내가며 그렇게 살았죠."

윤씨는 물레를 쓰지 않는다. 직접 주물러 만드는 판 작업과 길게 뽑은 흙을 쌓아올리는 타래쌓기 등 기계의 힘 없이 오직 손과 발을 이용해 도자기를 만든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매끈한 세련미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소박함과 편안함, 그리고 자유로움이 넘친다. 반응은 해외에서 더 뜨거웠다.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대영박물관, 호주 빅토리아국립미술관 등이 앞 다퉈 그의 작품을 사들였고, 2004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다.

그는 재능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학교 다닐 때 나보다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꺾이지 않았다는 것이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버텨왔기 때문일 겁니다."

그는 15년째 경주 도덕산의 바람골에서 살며 작업하고 있다. 광주 작업장 근처에 여관과 카페가 들어서는 바람에 사람을 피해 더 깊은 산 속으로 옮겨갔다. 사방팔방 산만 보이는 그곳에서 아침 7시면 작업장으로 나가 조수도 없이 혼자 해 질 때까지 일한다.

그가 1년 동안 완성시키는 작품은 불과 10~12점. 그나마 2005년부터 3년 간은 단 2점밖에 만들지 못했다. 숱한 해외 전시에서 기력을 소진한 탓인지, 아무리 만들어도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무작정 여행을 다니고, 쓰러질 때까지 술을 먹고, 낚시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올해 초 술과 담배를 모두 끊고 단식을 했다. 그러고 나니 머리가 맑아지면서 다시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그렇게 힘겹게 태어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윤씨가 신작으로 국내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은 9년 만이다. 홀쭉한 몸에 50㎝ 높이의 삼각 기둥 모양 '산중일기' 연작은 일반적인 도예의 비례에서 벗어나 독특한 조형미를 풍긴다. 윤씨는 "삼각형은 시점에 따라 다른 모습이 보이는 예민한 형태"라며 "그 변화무쌍함이 좋다"고 말한다.

우둘투둘한 겉면에 손으로 흩뿌린 흰색 화장토는 점이 되기도 했고, 흘러내려 선이 되기도 했다. 스폰지로 툭툭 화장토를 찍어 바른 뒤 못으로 반야심경 구절을 새겨넣은 '심경' 연작은 그에게는 수행과도 같았던 작업의 결과물이다.

이번 전시는 그가 지난 9월 1억원 상금의 경암학술상(예술 부문)을 수상한 기념으로 마련됐다. "나라고 왜 좀 편하게 살아볼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만 지금껏 단 한번도 남들이 요구하는 대로 작품을 만들지 않고 살았습니다. 전업작가의 길을 택해 힘들게 작업하는 후배들에게 격려가 될 것 같아 너무 좋습니다."

윤씨는 "작품은 남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아이디어나 지식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순수와 고독과 열정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의 투박하고 거친 분청사기가 감동을 주는 것은 이런 그의 믿음과 삶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시는 내년 1월 3일까지. (02)734-0458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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