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가족끼리 좋은 공연을 보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시작하고픈 생각이 든다. 그러자면 시즌에 어울리는 공연이어야 하는데, 여기 해당하는 레퍼토리가 너무 고정되어 있어 선택이 쉽지 않다. 요맘때마다 비슷한 프로그램을 반복해서 봐야 하는 것도 고역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발레 '호두까기인형'이다.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서울발레씨어터는 물론 외국단체까지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내한한다.
동심의 세계를 완벽하게 담아낸 차이코프스키 음악은 실로 뛰어나지만 공연이 끝나고 아이 손을 잡고 나오는 부모에게는 "역시 발레는 어른용이 아니야!"라는 편견을 안겨주는 동화 발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나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도 마찬가지다. 계절에 관계없이 언제 들어도 감동적인 대작인데도 연말에 주로 연주되다 보니 송년용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 오페라 중에도 겨울의 초입에 어울리는 작품이 여럿 있다. 22일로 탄생 150주년을 맞는 푸치니의 '라보엠'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랑을 시작한 가난한 젊은 연인들의 슬픈 얘기다.
이런 배경을 살려 국립오페라단이 작년부터 연말 레퍼토리로 정착시키고자 야심찬 프로젝트를 가동했지만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화재로 이어진 안타까운 결과를 빚고 말았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는 섣달 그믐날에 벌어지는 유쾌한 사건을 묵은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릴 만큼 잘 짜여진 줄거리에 담아 인기가 높은데, 수도권의 한 공연장에서 연말 레퍼토리로 개발한다는 설이 있었다가 아쉽게도 더 이상 진척되지 못했다. 이상 두 오페라가 어른용이라면 훔퍼딩크의 '헨젤과 그레텔'은 '호두까기인형'의 오페라 판이다.
주인공이 어린 남매인데다가 요정과 마녀도 나온다. 그러나 아빠 역을 빼고는 모두 여성 출연진으로 채울 수 있기에 우리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 오페라보다 여자대학교 공연용으로 자리잡았다.
외국의 유명 극장도 연말 시즌의 프로그램 개발에 골몰하는 모양이다. 런던의 로열 발레는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이 발레단의 전설적인 안무가 프레데릭 애쉬튼이 만년에 영상용으로 안무한 '베아트릭스 포터 이야기'를 무대용으로 수정하여 호평을 받고 있다. 베아트릭스 포터는 토끼가 주인공인 그림책 '피터 래빗 이야기'로 유명한 동화작가다.
포터가 창조한 영국적인 동물 캐릭터를 재현하고자 로열 발레의 콧대 높은 유명 스타들이 숨막히는 동물 복장을 뒤집어 쓰는 수고를 마다하지않고 있으니 어른부터 아이까지 온 가족이 박수를 멈추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의 연말 클래식 무대에도 새로운 히트작이 출현하기를 기대한다.
음악공동체 무지크바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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