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화ㆍ로버트 네프 지음/푸른역사 발행ㆍ368쪽ㆍ1만6,000원
1882년 처음 서울에 온 고종의 독일인 고문 묄렌도르프는 임오군란 때 가족이 몰살당한 민겸호의 집을 숙소로 제공받았다. 이 집은 살해당한 가족들이 귀신이 되어 머물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고, 고종은 묄렌도르프가 이 사실을 알면 격노할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귀신이 들렸다고 소문난 집들은 아주 싸게 거래됐기 때문에 귀신을 믿지 않는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정성화 명지대 사학과 교수와 칼럼니스트 로버트 네프가 함께 쓴 이 책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1882년부터 한일합방이 일어났던 1910년까지 조선에 체류했던 서양인들의 일상을 조명한다. 지금까지 서양인들이 관찰한 구한말에 관한 책들은 많았지만, 그 시대를 이 땅에서 살았던 서양인들의 삶을 쓴 책은 거의 없었다.
저자들은 각국의 외교관뿐만 아니라 선교사, 교육가, 여행객, 이권을 찾아온 광산업자 등 다양한 부류의 서양인들이 한국에서 겪은 삶을 모았다. 선교사 알렌은 친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단지 쌀과 사냥감 그리고 약간의 작은 과일만 얻을 수 있습니다.
고기는 많지만 노쇠한 황소나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암소를 사용해 질이 아주 나쁩니다. 채소가 없어 우리가 직접 길러야 합니다"라고 썼다. 식료품이나 난방용 석탄 등 생필품을 중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해야 했기 때문에 서양인들에게 서울은 생활비가 아주 비싼 도시였다.
초대 미국 공사인 루셔스 푸트가 정착한 정동을 중심으로 차츰 서양인촌이 형성됐다. 그들은 도로와 가로등을 설치하고 불결한 개천을 개선했으며 서양물품을 파는 상점과 호텔 등을 세워 서울의 모습을 차츰 바꾸어갔다.
1903년 미국의 '보스턴 선데이 포스트'가 한국 황제 고종과 에밀리 브라운이라는 서양 여성이 결혼식을 올렸다고 다양한 삽화와 함께 보도했다. 물론 오보였다. 그 해에 고종이 혼인을 한 여자는 엄비였다. 이 보도 후 한국 왕실에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미국인들의 신청서가 쇄도했는데 알렌 등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소문이 상당히 오래 지속됐다고 한다. 이 보도가 단순 오보였는지, 의도가 있는 날조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선교사 스크랜턴, 세브란스병원을 설립한 에비슨, 육영공원 교장 프램프톤,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베델 등이 비밀단체 프리메이슨의 멤버였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이밖에 고종에게 신임장을 제정한 지 석 달 만에 해임된 술고래 미국 공사 이야기, 경인철도 부설공사에 온 캘리포니아 출신 카우보이가 조선 사람의 상투를 겨냥해 사격 연습을 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던 일, 한국에서 처음으로 서양인이 사망한 경위 등 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들이 많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