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경기 수원시 유흥가. 직장인 전모(34)씨는 "싼 가격에 양주를 마시고 2차도 갈 수 있다"는 호객꾼(일명 삐끼)의 유혹에 인근 T유흥주점을 찾았다.
하지만 그것이 '악마의 초대장'인지는 미처 몰랐다. 전씨가 가짜 양주를 탄 폭탄주로 만취 상태에 빠지자 업주 최모(34)씨는 신용카드를 빼앗아 140만원을 인출했다.
또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도록 윤락녀가 대기 중인 인근 모텔에 데려다놓았다. 구토로 고통스러워하던 전씨는 혼자 모텔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결국 급성 알코올 중독증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취객에게 양주를 팔아 바가지를 씌우는 '삐끼 업소'들이 급기야 죽음까지 부르고 있다. 술자리가 빈번한 연말이 되면서 삐끼 업소에 들렀다가 봉변을 당한 피해자들이 급증해 주의가 요구된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12일 가짜양주를 마시게 하고 돈을 빼앗은 뒤 손님을 모텔에 방치, 2명을 숨지게 한 혐의(강도치사)로 최씨와 종업원 박모(25)씨를 구속하고 조직폭력배 최모(30)씨와 호객꾼등 2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삐끼'를동원해 취객들을 유인, 가짜 양주를 마시게 하고 정신을 잃으면 빈 양주병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수법으로 바가지를 씌운 뒤 신용카드를 빼앗았다.
또 취객들의 반발을 제압하기 위해 혼자이거나 둘 정도인 일행만 범행 대상으로 삼았고, 나중에 신고를 못하도록 모텔로 끌고가 윤락녀와 성관계를 맺은 것처럼 꾸몄다.
2005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경찰이 확인한 피해 사례만 7건이고 피해 금액은 2,000만원을 넘는다. 또 전씨 이외에도 지난해 8월에는 또다른 전모(25)씨가 비슷한 수법으로 돈을 털린뒤 모텔에 방치됐다가 숨졌다. 취객만을 골라 바가지를 씌우고 돈을 빼앗는 범죄가 올 연말에도 전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최근 서울 잠원동의 한 빌딩 지하에 술집을 차려놓고 가짜 양주로 취객들에게 바가지 요금을 씌운 일당 21명을 붙잡았다.
이들은 9월부터 이달 9일까지 57차례 범행을 저질러 3,340만원을 뜯어낸 것으로 조사됐다. 또 단속을 피하기 위해 출입문 양쪽에 감시 카메라를 달았고, 취객들이 핸드폰으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도록 전파차단기까지 설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평소 한달에 1,2건이던 피해 신고가 연말이 되면서 일주일에 3, 4건으로 늘었다"며 "유흥가를 중심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술에장사'인 사람도 가짜 양주로 만든 폭탄주에는 정신을 잃을 수밖에 없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가짜 양주는 출고가격이 5,000원 안팎인 700㎖ 싸구려 양주 한 병에 이온음료 1캔, 자양강장제 1병을 섞어 만들기 때문에, 상표만 빌려 준 진짜양주보다 훨씬 빨리 취하게 된다.
피해자 양모(34)씨는 "평소 주량의 절반도 마시지 않았는데 정신을 잃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삐끼들이 '싸게 술 마시고 2차까지 갈수있다'는 유혹은 자칫 죽음을 부르는 초대장이 될수있다"며 "연말연시 송년회 뒤 귀갓길에 접근하는 호객꾼은 무조건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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