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부산 정성훈, 강한 몸싸움 합격점…K리그도 8골 '주전 자리매김'
[스포츠한국] 그라운드 위에서 팬들은 스타의 화려한 플레이에만 열광하지 않습니다. '만년 조연'에서 '화려한 주연'으로 거듭난 이야기에도, 고통과 아픔의 시간을 딛고 인고의 꽃망울을 터트린 이야기에도 진한 감동을 받고 새 힘을 얻습니다. 2008시즌 K리그엔 유독 사연많은 이들이 대거 등장해 풍성한 이야기를 낳았습니다. 매주 두 차례 'K리거의 재발견' 시리즈를 통해 '이제는 말할 수 있는' 그들의 뒷얘기를 들어봅니다.
재발견이다. '허정무호'의 주전공격수로 거듭난 정성훈(29ㆍ부산)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문구다. 정성훈은 2002년 프로 데뷔 후 주전자리도 꿰차지 못한 그저 그런 공격수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출범 첫 해를 마감한 '허정무호'가 발굴한 '흙속의 진주'로 꼽힌다. 29세에 '늦깎이 태극전사'로 뽑히는 등 올해 맹활약을 바탕으로 '희망가'를 울려 퍼지게 한 장신 스트라이커 정성훈을 최근 부산의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성격까지 바꾸게 만든 황선홍 감독과 인연
정성훈은 지난해를 끝으로 FA(자유계약선수) 조건을 갖췄다. FA시장에서 평가 받고 싶었지만 그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트레이드 돼 부산 유니폼을 입었다. 정성훈은 "상의 없이 이뤄진 트레이드에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오기가 생겼다"며 얼굴을 붉혔다. 내키지 않는 트레이드였지만 부산의 사령탑으로 황선홍 감독이 부임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그는 "진짜 많이 배울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황 감독님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올해 부산에 둥지를 튼 정성훈의 두드러진 변화는 성격이다. 그는 "성격이 내성적이었는데 황 감독님의 영향으로 외향적으로 180도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황 감독이 정성훈에게 주문한 건 '부담 없이 즐겨라'와 '내가 최고'를 가슴에 품고 뛰는 것. 움직임 하나하나를 세심히 지적해주는 '선생님'이 생긴 정성훈은 그 어느 때보다 즐겁게 축구를 하게 됐다. 활발한 성격으로 바뀐 정성훈은 이제 팀에서 가장 편한 '형'이자 웃음을 주는 '분위기 메이커'가 됐다.
▲수비수가 될 뻔했던 아찔한 순간
'허정무호'에 없어서는 안될 공격수가 된 정성훈이 하마터면 수비수로 전향할 뻔한 아찔한 사건이 있었다. 2007년 대전이 코칭스태프간 불화설로 뒤숭숭하던 후반기 때였다. 당시 공석이었던 사령탑에 김호 감독이 부임했고, 김 감독은 정성훈에게 수비를 볼 의향이 없냐고 물어본 것. 정성훈은 "스트라이커로서 포부를 갖고 있었는데 수비수 전향 권유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이후로 축구가 하기 싫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결국 그는 후반기에 단 2경기에 교체 출전했을 뿐 그대로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하기 시작한 정성훈은 고등학교 3학년까지 미드필더를 주로 봐왔다. 경희대에 진학하면서 그의 공격 재능을 눈여겨 본 박창선 감독의 권유에 따라 스트라이커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골 넣는 쾌감에 흠뻑 빠졌다. 프로에서 사이드 공격수를 보긴 했지만 스트라이커가 나의 자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A매치 데뷔골과 남아공월드컵 위해 다시 뛴다
올해 31경기(컵대회 포함)에서 8골4도움을 올린 그는 '황선홍호'의 주전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또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입지를 다졌다. 지난 10월11일 우즈베키스탄과 친선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후 줄곧 대표팀 최전방 공격수로 중용 받으며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도 맹활약했다. A매치 4경기를 소화한 정성훈은 강한 몸싸움과 높은 제공력 등 공격적인 움직임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 A매치 데뷔골을 신고하진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그는 "시즌은 이미 끝났다. 새로운 경쟁을 시작할 때"라며 '초심'의 자세를 강조했다.
부산=김두용 기자 enjoysp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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