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의 한 해 암으로 인한 경제 손실은 연간 14조 원 정도로 추정된다. 300만대 자동차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 500억 달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연간 11만 명의 암 환자가 새로 생겨나고 있고 6만 명 이상이 암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의 평균수명은 남자 75세, 여자 82세로 이미 초 고령화 사회로 진입, 향후 우리의 암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 자명하다.
정부와 학계는 암에 의한 생명 손실을 막기 위해 1996년부터 '암정복 10개년 계획'이라는 암관리사업을 시작했다. 주된 내용은 전담 부서인 암 관리과를 신설하고 국립암센터를 설립하며 암 관련법을 정비, 암 연구를 체계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체 예산은 10년간 5,800억 원 정도로 턱없이 부족했다. 2006년부터는 제2기 암정복 10개년계획이 출범했는데 향후 10년간 5조 8,000억 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사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 중 무료 암 검진 등 암 관리정책이 우리처럼 잘 정비된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는 제1기 암정복 10개년계획 때 다른 국가에는 없는 암 관리법을 제정했고 국가 암조기검진사업을 공적 부조의 형태로 시작했다. 필자가 국립암센터 원장으로 있던 지난 2년간 한국의 암 관리정책을 배우기 위해 중국, 태국, 이란, 인도네시아 등 여러 국가가 교류를 원했다. 우리가 암 관리 정책의 모델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암에 대한 진단과 치료 수준이 높아지면서 예민하게 부각되는 것이 암 생존율이다. 암 보장성이 미흡하긴 하지만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로 병원 문턱이 낮은 우리나라의 경우 암 환자에 대한 진단과 치료율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소위'향후 5년 생존률'이 높아지는 데 이는 상당히 고무적 현상이다.
그러나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암 생존자 수가 많아지면 암 치료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은 여전하다. 생존자의 정상적 사회 복귀도 문제고 새로 발생하는 암 환자는 계속 늘어나 부담은 가중된다. 이것이 지금까지 암 조기 진단에 치중해온 국가 주도 암 관리정책의 결과이다. 암 환자 생존율을 문제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방치하면 현재 14조 원에 달하는 암 경제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생존율의 향상에 만족하지 말고 암 사망률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생존율이 늘어난다고 사망률이 자연적으로 감소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는 환자의 수만 더 늘어난다. 그렇지만 암 사망률은 감소돼야 하며 그 다음에 암 발생률을 줄이도록 정책을 전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암의 일차 예방에 더욱 치중해야 할 것이다. 금연, 절주, 간염 예방접종, 짠 음식 개선, 건강한 식생활 문화, 체중 관리, 안전한 성생활 등등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암의 일차 예방은 국민 개개인의 책임과 몫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일차 예방이 성공해야 암의 사망률과 발생률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단위의 암 정책을 수립하고 암 예방대책을 지원하는 중심 기구로 2001년 설립된 국립암센터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립암센터가 민간 의료기관과 같은 개념으로 운영ㆍ평가되면 독자적 존립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본연의 기능인 암 예방과 관리에 주력하도록 연구 중심 조직으로 변환하고 과감한 국가 재정의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는 암 예방에 대한 선제적 투자가 국가부담을 줄인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선진 외국에서는 최근 암 발생률이 감소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는데 우리가 지금 암 예방에 더 힘쓰면 선진 외국 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 암 사망률과 발생률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유근영 서울의대 교수 · 前 국립암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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