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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없는 코피노 만명… "한국男 나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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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없는 코피노 만명… "한국男 나빠요"

입력
2008.12.1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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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닐라 시내 아들리아 티코 거리에 사는 여섯 살 A군은 '아빠'라는 한국말은 알지만, 한국인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 엄마(25)가 10대 때 유흥업소에서 접대했던 수많은 한국인 중 한 명으로 추정될 뿐이다. 엄마가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동안 A군은 혼자 집이나 거리에서 빈둥대다 이웃 집에서 겨우겨우 끼니를 해결한다.

A군은 최근 필리핀에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코피노(Kophinoㆍ 한국인과 필리핀인 혼혈)다. 현지 교민단체 관계자는 "코피노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갈 나이가 돼도 현지 미혼모들이 가난해서 학교에 보낼 엄두를 내지 못해 길거리에 방치되고 있다"며 "무책임한 한국 남성들로 인해 벌어진 일이 부끄럽고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한국 남성의 필리핀 성매매 관광이 현지 미혼모와 코피노 급증으로 이어져 국제적 망신을 사고 있다. 한국인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감이 확산되고 있어 심각한 외교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 태어난 코피노들은 필리핀 판 '어둠의 자식들'이다. 한국인 유학생과 관광객들이 순간의 쾌락만 좇다 떠난 자리에 버려진 이들은 대부분 가난한 미혼모 밑에서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방기되고 있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현지 교민단체들은 5년 전 1,000명 수준이던 코피노가 최근 1만명 정도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필리핀에서 혼혈 문제가 커지고 있는 것은 성매매 관광 및 단기 유학생 급증에다 피임과 낙태를 죄악시하는 필리핀의 가톨릭 문화가 겹쳐졌기 때문이다. 필리핀 관광청에 따르면 1997년 17만명이던 한국인 방문객은 지난해 65만명으로 4배 가량 늘었다.

필리핀 당국이 적극적으로 골프 관광객 등을 유치했고 영어 연수를 값싸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목요일이나 금요일 필리핀행 비행기는 거의 만석이다"며 "최근에는 태국의 정정이 불안해 필리핀 여행객이 더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관광객의 행선지는 대략 낮에는 골프장, 밤엔 홍등가로 굳어져 있다. 5년째 기러기 아빠인 A(42ㆍ자영업)씨는 2박3일 일정으로 매년 2~3회 필리핀을 찾는다. A씨는 "필리핀에선 하룻밤에 300달러 정도면 왕처럼 대접을 받는다"며 "한국에선 성매매특별법 때문에…"라며 말끝을 흐렸다.

단기 어학 연수생들도 영어를 빨리 배우겠다며 필리핀 여성과 동거하다 자식까지 낳고선 무작정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교민단체 관계자는 "필리핀 여성들이 특별히 피임을 요구하지 않고, 가톨릭 영향과 비용 문제로 중절도 하지 않는다"며 "필리핀을 찾았던 남성들은 필리핀에 자기 2세가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추태로 한국인을 보는 현지인들의 시선이 날로 싸늘해지고 있다. 마닐라에 거주하는 아넬리아(26)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람의 감정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이야말로 야만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최근 '코피노 급증'이란 제목으로 한국 남성을 은근히 조롱ㆍ비난하는 기사를 크게 다뤘다. 최근에는 한국인이 낀 현지 조직이 필리핀 여성 소개를 미끼로 한국 남성을 필리핀으로 유인해 납치하는 사건까지 발생, 국제 공조 수사가 벌어지고 있다.

교민과 한국 복지 단체들은 현지에서 코피노를 위한 영육아 교육시설 2곳을 운영하며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김현순 필리핀 한인협회복지 국장은 "코피노들은 한류의 사생아"라며 "과거 비슷한 경험을 가진 한국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데, 나중에 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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