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우리나라에서도 실물경제가 본격적인 침체에 접어들고 있다. 특히 부동산과 금융시장이 밀접히 연계된 현실에서 주택시장 위기가 국민경제 전체를 수렁에 빠뜨릴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온다.
한국부동산분석학회와 한국주택학회는 지난 주 '금융위기와 주택시장'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부동산분야 연구에 일생을 건 학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인 이 자리에서도 다양한 시각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주관적으로 요약한다면, 일부 비관론에도 불구하고 통계에 기초한 객관적 전망은 최악의 시나리오와는 거리가 있다.
'최악 시나리오' 근거 없어
첫째, 주택가격이 폭락한다는 잇단 보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주택가격 공식통계, 실거래가 자료, 경매낙찰가율 중 어느 것도 폭락설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거래가 동결된 상태에서 가끔씩 나오는 급매물 가격을 일반적 가격동향으로 보기는 어렵다.
주택가격 하락이 국제경제 악화, 금융시장 경색, 실물경제 침체 등을 반영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유 없이 오른 가격이 폭락하는 '거품 붕괴'라고 보기는 어렵다. 부동산과 같은 고가의 자산에 거품이 생기고 자라기 위해서는 금융부문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우리 시장에서는 LTV, DTI 등의 대출규제가 이를 막았다. 최근 몇 년간 주택가격은 강북지역의 주택수급, 금융규제, 재건축 규제, 부동산 중과세 등 모두 나름대로 설명이 가능한 범위에서 등락하였다.
둘째, 은행권의 LTV는 6월 현재 평균 48.8%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2006년 비율이 94%에 이르러 조금만 가격이 하락해도 대출이 부실화한 것에 비해, 우리는 그럴 위험이 작다. 실제 올 2분기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0.4%이다. 일부 주택은 저축은행의 추가대출로 LTV가 80∼90%에 달하지만, 그 전체 규모가 걱정할 정도로 큰지는 알 수 없다. 주택가격이 계속 하락하면 과도한 욕심을 부렸던 개인이나 금융기관이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이는 시장의 규율일 뿐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셋째, 전국적으로 15만7,000호에 이르는 미분양주택은 방치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6월말 현재 시중은행 부동산 PF대출은 총 대출잔액의 4.4%에 불과하고 연체율도 0.68%이다. 저축은행의 PF대출은 대출잔액의 24.1%에 달하고 연체율도 14.3%로 높아 대책이 불가피하다. 최근 정부가 공적자금 투입을 결정하였지만, 수요진작을 위한 보다 전향적 조치가 필요하다. 일부 건설회사와 저축은행이의 부실화는 피할 수 없겠지만 국민경제를 휘청거리게 할 가능성은 낮다.
내년 전망은 어떤가. 밝은 면을 본다면, 금리가 크게 오를 가능성이 낮아 소비자 대출이 부실화하고 주택가격이 폭락할 가능성도 적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각국 정부가 쏟아 내는 유동성이 4조 달러에 달한다는 추산이 있는데, 이 돈이 돌기 시작하면 자산시장에서 유동성 장세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내년 '유동성 장세' 기대도
부정적 측면에서는 세계경제가 장기 침체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아 부동산 시장이 침체될 수 있다. 1990년대 말 경제위기가 세계경제 호황 덕에 V자형 패턴이었다면, 이번에는 L자 패턴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해도 균형된 시각에서 본다면 10년 전 경제위기보다 더 나쁜 상황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여야는 부동산 감세안에 합의하였지만, 부동산 가격이 올라 걱정하던 때 도입되거나 강화된 세금을 원상태로 복구하는데 까지 이르지 못하였다. 지금처럼 부동산 가격 하락이 큰 걱정거리인 때 정치권이 상황인식을 올바로 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한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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