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거주 외국인 100만 명 시대다. 지난 국정감사 때 법무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은 약 113만 4천명이다. 이 숫자는 아직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결혼 이민자 10만 명을 포함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결혼이민 국적취득자 4만 여명과 이들 자녀 6만 여명이 있다. 이제 외국인이나 결혼이주민을 길거리 어디서나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세상이다.
국민들이 당연시 했던 단일 민족주의는 그 정통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어떤 학자는 우리의 혈통 순수성이 이미 삼국시대 이전부터 손실되었고 '단일'이란 실재하지 않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다른 학자는 헐리우드와 같은 세계적 문화생산 공장들이 서구식 생활양식을 전세계로 확산시킴으로써 국가의 '고유한 단일 문화'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온정적 동화(同化)주의 팽배
이제 우리의 다문화 사회 진입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시적이다. 하지만 우리의 다문화 양상은 가족이민을 받아들인 외국의 경우와는 상이하다.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 대다수는 결혼이주민이라는 특수성을 띈다. 국적 면에서 보면 일본을 제외하고는 주로 중국, 베트남, 필리핀, 몽골, 캄보디아, 태국 등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아시아 국가들이다.
결혼이주민의 약 70%는 여성으로, 많은 경우 농어촌 총각들에게 시집 왔다. 어려운 나라 여성들이 말도 관습도 틀린 이방 남성을 찾아 타향살이를 시작한 것이다. 어려움이 어디 한 두 가지이겠는가? 이들의 고달픔에 대한 우리의 막연한 상상은 결혼이주민 여성 남편의 폭력과 학대, 살인이라는 매스컴 보도를 통해 현실화된다. 여기에 착취당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삶이 실루엣처럼 겹쳐 이들에 대한 이미지가 하나의 영상으로 완성된다.
결국 결혼이주민 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은 불쌍한 자, 안쓰러운 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들과 그 가족의 삶은 '문제' 시각에서 조명된다. 언어와 문화적응이라는 기본적 문제부터 부부 관계, 시댁과의 관계, 자녀 교육 등 수많은 문제가 등장하게 된다. 이들의 어려움이 우리 농촌 총각과 영세작업장 살리기와 같은 선상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온정적이며 시혜적인 정책은 대중적으로 그 정당성을 얻는다.
이들을 참으로 힘들게 하는 것은 우리의 왜곡된 민족우월주의가 각 나라의 민족정체성에 이중적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월성을 과시하거나 우리 문화로의 동화(同化)를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보다 못한 나라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리의 규범과 가치가 그들 삶의 지배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믿으며 동화를 강요하고 차별한다.
다문화 통합적 시각 필요
<제국의 미래> 저자인 예일대 교수 에이미 추아는 역사상 존재했던 초강대국들은 절대적 우위에 오르기까지 하나같이 대단히 다원적이고 관용적이었다고 강조한다. 제국의 쇠퇴는 불관용과 외국인 혐오, 그리고 인종적, 종교적, 민족적 '순수성'의 촉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지적한다. 제국의>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은 벌써부터 이민정책을 '동화'에서 '통합'정책으로 옮겼다. 다문화 통합정책은 손님이나 시혜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던 소수 민족자들을 주류사회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들의 다양한 경험과 문화를 인지하고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들을 온정적 시혜 대상이 아니라 사회의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 국민은 문화적 감수성을 기르고 사회는 다문화 친화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런 환경이 조성된다면 결혼이주민과 배우자, 그 자녀들은 두 문화를 성공적으로 통합하여 다중 문화자, 이중 언어자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세계화시대의 견인적 인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홍순혜 서울여대 사회복지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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