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패자였다. 북핵 검증의정서 채택과 대북 경제ㆍ에너지 지원 시간표 마련을 목표로 5개월 만에 재개됐던 6자회담이 성과를 내지 못한 채 11일 막을 내렸다. 예정됐던 일정을 하루 연장하며 합의문 도출을 꾀했지만 알맹이가 없는 의장성명만 남긴 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출발부터 불안했다. 한국 수석대표인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날 회의 시작 전부터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는 말로 비관적 전망을 내비쳤다.
오전 11시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에 모인 6자회담 수석대표들은 활발한 양자, 다자접촉을 이어갔으나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한 관계자는 "검증의정서 채택 문제는 10일 이미 안 되는 쪽으로 정리됐고 오늘은 의장성명 문구를 놓고 주로 토의했다"고 전했다. 사실상 안 되는 회담이었다는 뉘앙스였다.
결국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회담이 끝나기도 전에 댜오위타이를 떠났고, "검증의정서 문서화에 실패했다"며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오후 7시반 의장성명이 발표됐지만 쟁점 현안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은 형식적 문건에 불과했다.
회담 결렬의 1차적 책임은 북한에 있다. 북한은 10월 평양 북미회동 당시 '과학적 검증 절차'에 동의했지만 이후 말을 바꿨다. 회담 기간 내내 "현 시점에서는 시료 채취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며 버텼다. 검증 카드는 1월 출범하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신행정부와 상대할 때 쓰겠다는 뜻이었지만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많다.
일본의 훼방도 만만치 않았다. 회담 소식통은 "일본이 시료 채취를 포함해 명확한 표현을 넣어야 한다고 가장 강력히 요구했다"고 전했다. 북일 간 납치자 문제를 둘러싼 대립이 6자회담에도 악영향을 미친 것이다.
한국은 대북 경제ㆍ에너지 지원과 검증의정서 채택을 포괄적으로 연계하는 전략을 취해 북한의 반발을 샀다. 결과적으로 의장성명에도 이 연계 전략은 반영되지 못해 체면을 구겼다. 또 회담의 중재자보다는 압박자 역할에 치중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문제는 6자회담이 당분간 공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차기 회담 일정도 잡지 못했고 북미 간 이견만 확인했기 때문이다. 1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더라도 4, 5개월 이상 외교안보라인 청문회와 북핵 정책 검토를 거쳐야 한다. 상반기 중에는 북미 협상이 시작되기 어려운 구조다. 게다가 미국은 회담 기간 "앞으로 북미 양자접촉은 없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분위기를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검증 합의 실패의 대가로 한국 등은 중유 100만톤 상당의 대북 경제ㆍ에너지 지원 작업을 재개하지 않을 수 있고, 북한은 영변 핵시설 불능화 작업 중단 카드로 맞설 가능성이 높다.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미국에서 나올 수도 있다.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베이징=정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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