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견을 전혀 좁히지 못했다. 아주 어려운 회담이었고, 아주 힘든 하루였다."
북핵 6자회담 마지막날인 10일 회담장인 중국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를 박차고 나온 미국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일성이었다. 북핵 검증 방식과 주체, 대상 등 쟁점 사안에 대한 북한과 미국의 입장 차이는 컸고 결국 회담은 진통을 거듭했다.
오전 양자접촉을 거쳐 오후 3시20분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가 시작되자마자 교착 상황이 이어졌다. 3시간여 진행된 회의에서 최대 쟁점은 북핵 검증 방식과 주체를 둘러싼 논란이었다.
의장국인 중국이 9일 제시한 4장짜리 검증의정서 초안에는 '시료 채취'라는 직접적 표현이 빠져 있었다. 시료 채취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북한에 대한 배려였다. 한국 미국 일본은 그 동안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며 시료 채취 간접표현을 용인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이날은 "반드시, 명확히 넣어야겠다"(김숙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며 원칙론으로 돌아섰다.
북한은 이에 대해 "북미 간 불신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료 채취를 하는 것은 주권과 국가안보 차원에서도 문제다. 현 시점에서 시료 채취를 수용할 수 없다"며 뻣뻣하게 나왔고 회담은 좀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지체됐다. 북한은 특히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와 북미관계 개선 같은 근본적 요구를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1월 출범하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신행정부와 새로운 틀에서 협상을 하겠다는 뜻도 엿보였다.
검증 주체 문제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역할을 강화하자'는 한미일과 'IAEA의 역할은 7월 6자회담 합의대로 자문과 지원 역할에 한정해야 한다'는 북한의 입장이 맞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미국이 의정서 초안에 담자고 제의한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과 IAEA 복귀 문제도 타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중국이 6자회담 파국을 막기 위해 회의 일정을 연장, 11일 회의를 속개하고 북미가 극적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하루 사이에 북한이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낮아 이번 6자회담은 사실상 결렬로 끝날 공산이 크다. 힐 차관보는 이날 일정을 마친 뒤 "북한은 검증의정서를 합의하는 문제와 관련해 옳은 방향(right direction)으로 가지 않고 있다"며 힐난했다.
이번 회담을 일단 휴회 처리하고 내년 1월 중에 회담을 속개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이렇게 결론이 나더라도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 후 제자리를 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6자회담 재개는 상당기간 어려워 보인다.
베이징=정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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