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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세계인권선언 6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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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세계인권선언 60주년

입력
2008.12.1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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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였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 사람, 알면 큰 상을 주지." 어느날 사회 선생님이 수업 시작 전 우리들에게 물었다. 60명이 넘는 급우들은 서로 멀뚱거릴 뿐 답을 못해 상을 놓쳤다. 한참 뜸을 들인 다음 선생님이 알려주신 답은 세계인권선언일. 30년도 훨씬 넘은 1970년 대의 어느 해 12월 10일의 얘기다.

유신 시절 궁벽한 시골의 중학생들이 세계인권선언에 대해 알 턱이 없었다. 그날 선생님은 담담하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날이라고만 말씀해 그런가 보다라고만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름대로 어린 제자들에게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려는 뜻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 60년 전 오늘 유엔총회는 모든 인류가 다 함께 달성해야 할 공통의 기준인 세계인권선언을 공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인류가 겪은 참혹하고 야만적인 일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절박한 공감대의 결과였다. 전문과 본문 30개 조로 되어있다. 21조까지는 시민적 정치적 성격의 자유, 즉 자유권적 기본권에 관한 규정들이고, 22조부터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성격의 자유, 즉 생존권적 기본권에 관한 규정을 담았다. 이 선언은 1946년의 인권장전초안, 1966년 국제인권조약과 함께 국제인권장전이라고 불린다.

■ 세계인권선언이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세계 각 나라의 인권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난 60년 동안 이 선언에 담긴 소중한 가치들이 과연 얼마나 실천됐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한 뒤 새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인종 청소와 같은 대량 살육이 버젓이 벌어졌다. 아프리카에서는 살육과 기아 등 심각한 인권유린 상황이 현재 진행형이다. 한반도의 반쪽 북녘 땅은 숨 막힐 정도로 철저한 집단주의 체제로 자유와 인권을 운위할 작은 틈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 인권 선진국들에서도 인권이 짓밟히는 사례는 널려있다. 미군이 관리하는 관타나모 수용소의 비인도적 고문 논란이 그렇고,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행해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참상이 그렇다.

군사공격과 테러로 무고한 민간인들이 파리 목숨처럼 죽임을 당하는 곳에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는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없다. 인권 구호가 타자를 비난하고 공격하기 위한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렸다는 비판도 따갑다. 먼 곳의 인권을 소리 높이 외치지만 정작 자기 주변의 열악한 인권상황에 무관심하다면 말이 안 된다. 인권존중의 실천은 바로 나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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