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공직사회를 비판할 때 늘 등장하는'복지부동', '철밥통'같은 표현들이 가뜩이나 움츠린 사람들을 더욱 얼어붙게 하고 있다. 경제위기 한파가 한층 매서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눈에 불을 켜고, 밤을 새워도 시원치 않을 판에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공무원들은 높으신 지도자들이나 정치권 인사들이 자신들을'동네북'삼아 책임을 떠넘긴다고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들에게서 헌신의 자세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 상태를 결코 방치해선 안 된다는 점 만큼은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다.
공무원들의 무사안일과 직무유기, 태만 등에 대해선 여권에서 이미 수 차례 경고가 나왔다. 공직사회 기류를 보는 여권의 인식은"전 정권의 잃어버린 10년 잔재로 인해 정권은 바뀌었지만 코드가 맞지 않는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어 집권해도 집권한 게 아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 정부에 코드를 맞춰온 공무원들 때문에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얘기다. 여기엔 일부 공무원들이 복지부동을 넘어 일의 진척을 방해하는'사보타주'즉, 태업까지 하고 있다는 의심도 작용하고 있다.
상황이 심각하다면 이명박 대통령 정부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처방은'물갈이'일 것이다. 여권이 국가공무원법을 개정, 1급 공무원의 신분보장을 다시 폐지하려는 것은 노무현 전 정부가 도입한 고위 공무원단제도를 무력화하는 물갈이의 구체적 신호다. 그러나 칼을 대면 환부가 제거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너무 단선적이고 편협하다. 오히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 과연 전적으로 현 정부의 전가의 보도인'잃어버린 10년'때문일까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불행한 일이지만'노회한'공무원 사회는 정치적 역학관계를 민감하게 반영한다. 이는 여권 내에서 현재권력이니, 미래권력이니 하는 얘기가 공공연한 작금의 분열상도 공직기강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특히 같은 당의 두 권력이 한배를 탄 공동운명체가 아니라 한쪽이 잃으면 다른 한쪽이 얻는 해괴한 관계에 있을 때 공무원들은 더욱 헷갈릴 수밖에 없다. 아직 과거권력의 코드에 매몰돼 일을 그르치려는 공무원들이 있다면 이들은 물갈이 돼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4년후의 물갈이를 염려한 공무원들이 미래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줄을 대는 경우는 어찌 할 것인가. 현재와 미래의 권력이 함께 고민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 정부가 미래권력에 건성으로 손을 내밀거나 미래권력으로 대접받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탕평인사를 주장하면서 위기에 대해 미니홈피에"안타까움이 쌓이기만 한다"는 글을 올리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물갈이가 이미 실기했을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시기를 놓쳐서 하는 것이라면 방법은 보다 정교하고 세련될 필요가 있다.
현 정부의 인사 실패가 공무원들을 냉소적으로 만든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공무원들이 따를 수 있는 최고의 인재를 적소에 배치하는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얘기다. 시장의 불신만 문제가 아니다. 듣기에 위기대응 첨병인 모 경제부처 수장은 조직내부로부터도 조롱에 가까운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미래권력으로부터 현실의 협력을 구하기 어렵다면 현 정부는 인사라도 잘해야 한다. 그래야 물갈이 파장도 최소화할 수 있다. 연초에 청와대 진용을 개편하고 개각도 한다고 하니 두고 볼 일이다.
고태성 피플팀장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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