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경제 위기에 속절없이 휘말린 사회를 향해 '남북관계 위기'를 외치는 이들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보수적 정책과 북한의 '빗장 걸기'가 맞물려 남북관계가 후퇴하는 것은 딱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세상살이가 힘겨운 국민과 사회가 '남북관계 위기'까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상황인지 의문이다.
위기(crisis)는 사전적 풀이로는 "어떤 상태의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정세의 급격한 변화"이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crisis'는 원래 병의 회복과 죽음이 갈리는 갑작스럽고 결정적인 병세의 변화를 가리키는 의학용어라고 한다. 그런 만큼 개인과 사회, 정치, 경제 및 국제 관계에 이르기까지 힘겹고 고통스러운 변화 또는 불안하고 위험한 때를 가리킨다.
엇나간 '남북관계 위기설'
특히 남북과 같은 국제관계에서는 위협과 긴장을 느끼거나 무력 사태가 우려되는 상황을 일컫는다. 또 어떤 행동이 중대한 결과에 이를 것으로 믿게 하는 상황이다. 이런 위기 인식은 흔히 두려움과 스트레스, 분노, 충격 반응 등을 유발한다.
'남북관계 위기'를 되뇌는 이들이 이처럼 심각한 위협과 중대한 결과를 예감해 소리 높여 경고를 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렵게 일군 남북 화해ㆍ협력이 뒷걸음질 치는 것이 안타까운 나머지 상투적 표현에 기대는 것으로 볼만 하다. 다만 문제는 과장된 '위기' 인식을 앞세워 실제 현실이나 사리와 엇나가는 사회적 논쟁을 유도하는 것이다.
위기론자들은 무엇보다 '햇볕 정책'을 이 정부가 폐기 또는 수정한 것을 위기의 주된 요인으로 규정한다. 그게 화근이니 이제라도 '햇볕'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부의 대북정책 책임자들을 지난 정부 주변의 전문가로 바꾸라는 충고까지 넌지시 내놓는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애초 사리에 어긋난다. '햇볕 정책'은 남북 화해ㆍ협력에 큰 진전을 이뤘다. 그러나 계속된 사회적 논란과 북한의 변화무쌍한 행보에 비춰, 만고불변의 국가적 방책으로 여길 것은 아니다. 특히 보수 이념을 표방하고 집권한 정부에 계승을 요구하는 것은 공허할 따름이다.
어쨌든 이 정부 들어 '위기'가 닥쳤으니 근본을 고쳐야 옳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적대와 대치로 선회한 것이 오로지 이 정부 때문이란 전제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거칠게 요악하면, 북한은 지상 과제인 '체제 보전'을 위해 스스로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운 채 몸을 웅크리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라 안팎 정세 변화에 따라 되풀이 선택해온 생존 방식, '서바이벌 모드'이다.
북한의 서바이벌 게임에서 이미 남한은 결정적 변수가 아니다. 지루한 북핵 게임의 종착지를 북미 관계 정상화로 설정한데서 보듯, 미국과의 대결과 협상에서 '체제 생존'을 보장 받는 것이 지상 목표이다. 이에 비춰 북한은 미국의 새 정권과의 새로운 승부를 위해 허술함 없이 안팎을 단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시장경제 실험 등으로 느슨해진 사회 기강을 다잡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주목하는 이들은 우발적인 금강산 관광객 피살은 물론이고 대북 삐라 살포를 빌미로 삼은 남북 교류협력 중단도 예정된 것으로 본다. 노무현 정부 말기 2차 남북 정상회담의 거창한 결실에 물색없이 환호한 이들은 이 정부를 원망하지만, 당시 장미빛 전망을 곧이 믿었다면 순진하다.
"한반도 주변국이 바쁘다"
북한의 움직임에서 주시할 것은 김정일 위원장이 말 그대로 '유고(有故)'인 사실이다. 지난해 정상회담 때 쇠약한 모습을 간파했다는 전문가들은 남북관계는 물론 북핵 게임도 지금 북한 체제의 사활적 관심사가 아니라고 본다. 오로지 체제 단속과 생존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현상(現狀) 변경을 원치 않는 주변국들이 북한의 급격한 변화를 막고 통제하기위해 은밀하면서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정보기관이 어느 때보다 바쁠 것"이란 말까지 나온다. 고작 대북 삐라 논쟁에 매달려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강병태 수석논설위원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