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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다시, 길을 떠나다] <5> 만화가 이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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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다시, 길을 떠나다] <5> 만화가 이두호

입력
2008.12.0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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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화가예요. 볼 때 재미있게 보고, 다 본 뒤는 고개 끄덕이는 만화 그리는….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두루뭉술, 가장 한국적인 얼굴을 한 그의 주인공들을 닮아 만화가 이두호(65ㆍ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씨의 바람은 어찌 보면 검박하기까지 했다.

그가 최근 한국만화가협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2008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10일 열리는 시상식에 앞서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1969년 이후 40여년을 한눈 팔지 않고 만화가의 길을 걷는 그에게서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 만화가로서 많은 분량의 삶을 살았다. 스스로를 규정한다면?

"만화에 대한 뚜렷한 의식이 생겨난 80년대초 이후, 체질에 맞는 역사물에 집중하자고 결심했다. 주간중앙에 '바람 소리', 새소년에 '암행어사 허풍대'를 그린 이후 지금까지 역사물로 일관하고 있다. 누덕마을, 꺼꿀이, 왕질악 등의 고유명사가 그래서 탄생했다."

- 역사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생활 복식이나 용어 등을 확인하고 고증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스토리 짤 때 개연성 있는 상상을 하는 것이 즐겁다. 인간사란 시대만 다를 뿐 상황은 똑 같다는 믿음이 한몫하고 있다."

- 제일 좋아하는 인물은.

"을지문덕이다. 늘 당하기만 하는 한국사에서 시원한 느낌 선사하는 인물 아닌가. 그러나 직접 다루진 않았다. 조선시대 이전은 고증이 힘들기 때문이다."

- 만화라면 역사에 대한 상상력이 용인되지 않을까?

"내 생각은 다르다. 악당 홍윤성의 경우 세종실록 등에서 찾아낸 뒤 관련 자료를 다 뒤졌고, 1986년 주간만화에 연재한 '덩더꿍'에서 그 이름 그대로 썼다."

- 히트 친 인물들이 많다. 그 중 머털도사(임꺽정)가 단연 먼저 떠오르는데.

"한국형 판타지라 할 만한 머털도사는 어릴 적부터 주인공으로 한번 꼭 그리고 싶었다. 원제는 '도사님, 우리 도사님'으로 하려 했으나 가독교 계통 잡지라 제목을 바꿔야 했다.

'옛날 옛적 털살이'라는 이름으로 연재했는데, 소년경향 창간 때 게재하면서 머털도사로 개칭했다. 머리털 뽑는 버릇 때문이다. 또매는 '또 매 맞을 짓 한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장독대는 그 다음 나왔다."

- 주요 작가들의 만화박물관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던데.

"수년 전부터 사석에서 우연히 나왔다. 제대로 하려면 고우영부터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직 나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될 상황은 아니다.

- 만화가가 되기 전의 모습은.

"홍익대 서양화과에 다니면서 만화를 그렸다. 생계 때문에 만화를 그려야 한다는 갈등이 엄청 심했다. 유화를 그리고 싶은데, 사회 인식 나쁜 만화로 살아야 한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철조망, 기차 레일, 블록, 망치 등을 그리며 당시의 답답한 심정을 표현했다. 남한테는 절대 안 보여 줬다."

- 한국에서 만화의 지위가 사회적으로 향상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절필 선언까지 했던 게 그리 오래 전 일은 아니다.

"1997년 청소년보호법이 시행되고, 스포츠지에 연재중인 만화가들에 대한 압박이 현실화했다. 사회적 논란이 컸던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재판이 벌어지고 있던 때였다. 나도 스포츠조선에 연재중이던 '째바리'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었지만, 그보다 만화가협회 회장으로서 5년을 끈 재판마다 꼬박꼬박 갔다.

2002년 9월 3일 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유예됐다(그는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한다). 두 장면이 문제였다. 포도대장과 독대의 모친이 부정하는 장면, 포졸이 넘어진 독대의 사타구니를 칼로 겨누는 장면 등을 걸고 넘어졌다.

참담한 심정으로 항고해 볼 생각까지 하다, 다른 만화가들과 함께 절필을 선언한 것이다. 결국 스포츠지 연재 작가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이 났다. 증인 출두비가 모두 주차비로 들어갔다."

- 산업화된 한국 만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제 공은 만화가들에게로 넘어왔다. 외부의 압력은 현저히 제거됐고, 자기검열도 없는 때다. 이제는 좋은 작품만이 말해줄 것이다. 학생들한테 '만화는 엉덩이로 그린다'고 하는 것은 치열한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 테크놀로지도 급변하고 있는데.

"만화는 과도기에 돌입했다. 새 장르로 부상한 온라인 만화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현안인 시대다. 온라인 만화의 매체적 특성을 살린 '강풀의 순정 만화'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사례다. 그러나 원고료 현실화가 걸림돌이다. 젊은 만화가들의 온라인 만화는 고료가 없다."

- 사실 만화는 공짜라는 생각이 만연되지 않았나.

"그래서 유료 회원제 정착 등의 실질적 해결책을 놓고 만화가협회, 우리만화연대, 코믹타운 등의 행동이 주목되는 시점이다. 특히 해외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 만화 강국인 한국에서의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다."

- 애니메이션도 대세다.

"콘텐츠 개발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다. 과도기적 침체, 클릭 수와 원고료의 연계 등 연구해야 할 현안이 많다. 생산자들에게는 인터넷 환경에 맞는 연출력 개발을 당부한다. 출판, 영화와 연계될 수 있는 콘텐츠 개발이 관건이다. 특히 만화 강국인 일본은 한국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 바람직한 만화 강국상이 있다면.

"세계적 작가가 나와야 한다. 동시대의 가려운 곳을 시원히 긁어주는 시사만화, 산업적 부를 창출하는 만화 등. 지금 추세로 볼 때 5~10년 있으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지를 중심으로 만화 관련학과 졸업생들이 펼치고 있는 활동에 희망을 건다."

- 인세 수입은 얼마나 되나.

"프랑스에서 번역된 '임꺽정'에서, 그리고 '머털도사'는 모바일 중심으로 가끔씩 들어온다."

- 만화의 현실 변혁을 어떻게 보나.

"만화에는 영화와 문학의 기능을 다 할 수 있는 고유의 힘과 가능성이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스토리다. 그러나 문창과 출신 등 작가들이 큰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식객' '타짜' 등이 바로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나는 전문 작가와 작업하는 복이 없었지만 후학들에게 적극 권장한다."

● 기법 탐구 새로운 도전 '이두호의 가라사대'

이두호씨가 지난 7월 발간한 '이두호의 가라사대'(행복한만화가게 발행)는 그가 육순의 나이에 새롭게 던진 출사표다. 이 만화는 그가 면밀한 텍스트 연구로 건져올린 한국의 괴짜들 이야기다. 앞서 나온 '이두호의 한국사'(김영사 발행)의 문제의식을 확장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두호의 가라사대'에는 "만화는 엉덩이로 그리는 것"이라며 후학들에게 우직한 장인 정신을 강조해 온 그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적극 구사해 그린 만화 21편이 전편에 가득하다.

최초로 아크릴로 그린 만화도 있다. 12가지의 다른 기법을 한꺼번에 구사했다는 실험정신에서 단연 우리 만화사의 획을 긋는 작품이다. 말미에는 작업 도구와 그 사용 기법 등 작품의 '사양'까지 밝혀두었다.

그의 예술적 오기이면서, 후학들을 위한 스승의 배려다. 이씨는 "1회용 만화를 넘어서, 일본의 만화를 이겨낼 작품을 그리자는 전략적 시도"라고 말했다.

그는 "평소 학생들에게 더 이상 손 댈 것 없을 정도의 높은 완성도를 예술적 수준으로 요구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알베르 우데르조가 그린 '아스테릭스'나 앵키 발랄의 '나코폴' 같은 치밀한 만화를 보면, 내가 헛살았구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현실적 문제도 있긴 하다. 나는 쇄도하는 원고 청탁으로 한 달에 170쪽까지 그린 적도 있다. 완성도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친구들은 1년에 60~70쪽 그리는 게 전부다."

'이두호의 가라사대'는 또한 복싱, 축구, 홈 드라마 등 폭넓은 세계를 보여온 그가 다시 한국사 탐색으로 돌아가는 작품으로도 보인다. "고대를 기점으로 최소한 유신까지는 되돌아본다는 계획이다.

역사 전문가가 아니어서, 출판사에서 기초자료를 제공하면 내가 그리고 감수하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민초들의 시각에서 한국사를 그리려니 두렵고도 송구스럽다. 이이화 선생 등 사학자들의 책을 다시 보는 것은 그래서다."

그는 "'덩더꿍'을 그릴 때 전두환 정권 실세들의 행태를 풍자도 해 봤고, 마음에 안 드는 유형의 인간을 만화 속에서 죽이기도 해봤다"며 "이젠 우리 역사를 제대로 보겠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겪은 6ㆍ25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모친이 포성 속에서 나를 업어주던 일, 그 때 내리던 눈에 마치 반딧불처럼 보이던 총알 파편, 즐비한 시체, 살아남은 부상자들의 고통 등을 똑똑히 목도했다. 멋모르고 4ㆍ19 시위에 동참한 일, 이후 겪은 5ㆍ16 등 역사의 격변이 나의 개인사로 어떻게 간직돼 있는가를 돌아보고 싶다."

이씨는 "연재에 쫓겨 '가라사대'를 유화로는 못 그렸다. 기회가 되면 시간과 재료 아끼지 않고 증보하고 싶다. 다양한 표현 기법을 계속 연구하는 것은 바로 그 이유"라며 말을 맺었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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