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공항을 점거했던 시위대가 해산하고 6일 야당 민주당이 4개 군소정당과 함께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하면서 태국 정국은 비로소 안정을 찾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속으로는 더더욱 곪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는 의외로 태국 국민들이 '아버지'라 부르며 존경해 마지않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국왕이 국가의 분열을 낳은 근본 원인"이라고 보도했다. 1946년 1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그는 60년 가까이 국왕 자리를 지키며 국민의 절대적인 존경을 받아왔다. 정치에 일절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위기 때마다 도덕적인 위엄을 발휘해 정국을 안정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2년 '방콕 민주화사태' 당시 희생자가 발생하자 거리에 무릎을 끓고 앉아 비통해 하던 모습은 그의 도덕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는 허구일 뿐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의 혼란은 국왕이 막후에서 왕당파와 군부를 부추겨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탁신 치나왓 전 총리 세력을 몰아내려는 시도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탁신에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모인 모래알 같은 조직인 국민민주주의연대(PAD)가 선거에 의한 정치가 아닌 왕이 승인하는 이들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코노미스트는 "국왕의 절대적인 영향력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에 의회정치가 정착할 수 없는 것이 태국 혼란의 근본원인"이라고 지적했다.
2006년 태국 왕실의 비화를 담은 <왕은 절대 웃지 않는다(the king never smiles)> 를 발간한 폴 핸들리는 이와 관련한 몇몇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76년 푸미폰 국왕이 군부와 함께 우익 자경단을 결성, 학생시위를 탄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터넷을 통해 공개돼 파장을 일으켰던 두 대법관의 통화 내용은 탁신을 몰아낸 2006년 군부의 쿠데타 뒤에도 국왕이 있음을 암시한다. 왕은>
통화는 국왕은 판사들이 행동을 취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 중심의 연립정부 구성에 대해 친 탁신 계열이 8일 군부가 짠 각본에 의한 '위장쿠데타'라고 반발하는 것도 이 같은 전례 때문이다.
국왕이 친 탁신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려는 데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의료개혁 등 대중적 정책을 펴는 탁신이 국왕의 인기를 넘어설 것을 두려워했으며 또한 탁신이 와찌랄롱꼰 왕세자에서 접근하는 것 역시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태국 사태가 왕당파의 승리로 종결되면서 태국 정국은 더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왕의 영향력에 의해 국정이 좌지우지 되는 정치 시스템이 정착한 터라 연로한 국왕이 사망하면 아무런 대안이 없다. 후계자인 와찌랄롱꼰 왕세자는 젊은 시절 방탕하게 생활한 탓에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인기가 높은 시리던 공주는 미혼이라 왕위 계승에 어려움이 있다.
뉴스위크는 이런 점들을 들어 "태국이 내전에 돌입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이 잡지는 "경쟁자들이 권력을 놓고 다투는 식의 내란이 아니라 빈-부, 도시-농촌, 남-북, 친정부-반정부, 친국제화-반국제화 세력들이 끊임 없이 대립하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태국 유일의 야당인 민주당은 8일 아비싯 웨짜지와(44) 총재를 차기총리 후보로 추대했다. 반면 집권 정당 연합의 중심이었던 탁신 치나왓 계열 정당은 총리 후보조차 정하지 못해 태국에서 7년 만에 정권교체가 확실시되고 있다.
최지향 기자 jhchoi@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