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 없이 왔다가 가진 것 없이 간다는 무욕(無慾)의 삶이 한자어로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인 줄만 알았다. 신라 고승 혜초(慧超ㆍ704~787)의 <왕오천축국전> 에도 나오는 법어 중 하나고, 고려 고승 나옹(懶翁ㆍ1320~1376)이나 조선 문신 조현명(趙顯命ㆍ 1690~1752)의 글에도 인용돼 있어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부대래부대거(不帶來不帶去)'란 말이 있었다. 홍콩 영화배우 재키 찬, 우리가 아는 성룡이 직접 한 말이니 맞을 것이다. 세상적 의미에선 빈 손이라는 '공수'보다 지니지 않는다는 '부대'라는 말이 더 적확해 보인다. 왕오천축국전>
■성룡이 자신의 재산 4,000억원을 사회에 놓고 가겠다며 "생(生)부대래, 사(死)부대거"라고 한 말보다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 말은 그 다음이었다. "유능하다면 아비의 돈이 필요 없을 것이고, 무능하다면 아비의 재산을 탕진할 것이다." 외아들은 어쩔 것이냐에 대한 답변이었다. 성룡은 가난을 피해 호주까지 흘러가 미국대사관 주방에서 막일을 하던 부부의 외아들로 자랐다. 아들이 7살이 되자 학교 보낼 돈이 없어 부부는 숙식이 해결되는 고국의 경극학원(일종의 서커스단)에 맡겼고, 거기서 그는 10년 넘게 무예와 웃음(?)을 익혀 돈을 벌었다.
■우리나라에도 놀랄 만한 사연들이 있다. 며칠 전 교도소의 한 무기수가 자신이 갖고 있던 17만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보내왔다. 같은 시기 또 다른 교도소에서 10만원이 보내져 왔다. 그는 뇌병변 2급 장애인으로 병동에 수감 중이었는데, 법무부 수기 공모에서 받은 상금 6만8,000원에 자신의 돈 3만2,000원을 보태 10만원을 채웠다고 했다. 공동모금회 역사 10년 동안 죄수들의 돈을 기부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익명으로 동봉한 편지에 그들은 '추워진 날씨,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 얼마 되지 않아 미안하다'는 말을 써 놓았다.
■성룡의 4,000억원과 무기수의 17만원, 수감 장애인의 10만원은 '가진 것 전부'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밥할머니나 행상노인이 장학금이나 불우이웃 성금으로 평생 모은 전재산을 내놓을 때 우리는 깜짝 놀란다. 그 놀라움은 미안함 겸연쩍음으로 변하고, 가진 것의 일부나마 나누게 된다. 그리하여 모아진 돈이 공동모금회에 예상보다 많이 쌓여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 7일로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집 한 채만 남기고 전재산을 사회에 내놓겠다"고 선언한 지 꼭 1년이 됐다. 청와대는 아직도 우리를 놀라게 할 준비가 덜 됐나 보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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