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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존엄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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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존엄한 죽음

입력
2008.12.0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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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이용한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다는 '존엄사' 인정 판결이 나오기 이틀 전이다.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의료인문학 국제 심포지엄에서 네덜란드의 윔 데커 교수가 자기 나라에서 행해진 안락사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환자는 자신이 더 이상 삶을 유지할 이유가 없음을 반복해서 밝혔고, 이에 동의한 의사와 가족이 손을 잡아주고 입을 맞추는 등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그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장면이었다.

'연명치료'공론화 다행

이어진 강의에서 데커 교수는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된 이후 그 악용 사례가 거의 없었음을 증명하는 통계자료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개인적으로 안락사에 반대하지만 사회로서는 그것이 상당히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결론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과연 동성애자의 결혼을 허용하고 마약중독자를 처벌하기보다 오히려 약을 나누어주어 범죄를 예방하는, 징그럽도록 합리적인 히딩크의 나라 네덜란드의 개방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좌중의 분위기는 무척 불편해 보였다. 분명한 의지를 확인했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의식이 멀쩡한 살아있는 사람을 다른 사람의 손으로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날의 청중은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안락사나 존엄사에 대한 논의를 이끄는 생명윤리와 의료 전문가였으므로 그런 상황에 꽤나 익숙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지만 정서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리에게 죽음은 아직도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물리쳐야만 할 적이었던 것이다.

이번 연명치료 중단 결정은 이러한 우리의 정서에 문제를 제기한 최초의 공식 선언이다. 물론 이 판결이 네덜란드에서처럼 의식이 멀쩡한 사람을 죽음으로 인도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은 아니다. 다만 의학적으로 무의미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환자와 가족에게 고통을 주는 생명 유지 장치는 제거해도 좋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을 했을 뿐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뒤늦게나마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공론화가 시작된 것은 무척 다행스런 일이다. 고통 속에서 의미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는 많은 말기 환자와 그 가족, 그리고 죽어가는 인간의 생명을 기계적으로 연장해야만 하는 의료인에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간과된 두 가지 문제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는 죽음을 삶의 적으로 여기는 이분법이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히 사는 생명은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은 영원히 살려는 욕망이 빚어낸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래서 존엄사나 안락사를 말하기 전에, 의미 있고 값진 삶을 살되 죽음을 그 삶의 연장으로 받아들이는 문화를 창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미디어와 교육은 죽음을 감추려고만 해 왔던 것이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이제 내놓고 죽음을 이야기할 공간이 필요하다. 이번 판결은 그런 공간을 마련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하겠다. 개인적으로는 때때로 유서를 써보는 것도 죽음과 친해지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환자ㆍ가족의 고통 돌봐야

둘째는 많은 논의들에서 정작 환자 본인과 그를 돌보는 가족이 겪는 신체적ㆍ정신적ㆍ경제적 고통에 대한 배려가 빠져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전 재산을 날리고 억대의 빚을 져가면서 깨어날 가망도 없는 자식에게 엄청난 치료비를 쏟아 붓는 부모의 처지와 심정을 헤아려 보았는가? 그런 고통 속의 이웃과 아무것도 나누지 않으면서 생명의 존엄을 이야기하는 것은 위선이 아닌가?

온갖 의료장비에 속박된 채 기계적 삶을 연장하다 그 기계에 매달려 죽어가는 우리나라의 환자는 사랑하는 가족과 인생의 마지막 추억을 만들면서 죽어가는 네덜란드의 환자보다 행복할까? 죽어감 속에도 나눔이 있고 존엄과 행복이 있는 것 아닐까?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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