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11개월 전으로 되돌아 간 것일까. 판박이도 이런 판박이가 없다. 같은 지역의 냉동창고 지하에서 불이 난 것도 놀랍지만 화재 발생 원인이나 과정이 어쩌면 이렇게 쏙 빼닮을 수 있는지 아연할 따름이다. 도대체 우리 사회는 언제쯤 후진형 참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대형 참사에서 교훈을 얻자는 외침이 공허한 울림으로 끝나지 않는 날은 언제일까. 답답하기만 하다. 가뜩이나 불황의 깊은 늪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추운 겨울의 길목에서 들려온 참변이기에 가슴은 더 먹먹하다.
7명이 사망한 경기 이천시 서이천물류창고 화재 참사의 1차적 책임은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용접공에게 있다. 하지만 그에게서 본질적 원인을 찾는 것은 적절치 않다. 예전에도 그러했듯이, 만연한 안전 불감증과 적당주의 등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에서 원인을 찾는 게 순서다.
무엇보다 정부의 책임이 크다. 40명이 희생된 1월 화재 참사 이후 실효성 있는 대책 하나 수립ㆍ시행하지 못했다. 당시 우레탄폼과 샌드위치 패널이 물류창고 대형 화재의 주범으로 떠오르자 전문가들은 이들 자재의 내화(耐火)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관련 소방ㆍ건축 법규는 바뀌지 않았고, 우레탄폼은 이번에도 불쏘시개 역할을 하며 피해를 키웠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을 면하려고 허겁지겁 예방대책 마련을 약속하다 흐지부지 끝내고 마는 정부의 고질적 병폐가 이번 참사를 잉태한 것이나 다름없다.
형식적인 소방시설 점검과 안전교육 등 대충주의도 다시 지적되는 문제다. 서이천물류창고에는 무려 3,950개의 스프링클러 헤드가 설치돼 있었지만 화재 당시 작동하지 않는 등 무용지물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1월 소방 당국의 일제 소방검사와 10월 소방점검 대행사의 종합 정밀점검을 통과했다.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라 속단하기 이르지만 부실 점검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기존 방재 대책과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해 후진형 참사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 이런 판박이 주문도 마지막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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