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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두번째 장편소설 '철' 낸 김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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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두번째 장편소설 '철' 낸 김숨

입력
2008.12.0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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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세대, 지금의 60대는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는 아니지만 우리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통과한 세대지요. 쓸모가 다하고 난 뒤에 버려지는 그들의 이야기는 늘 울림을 줍니다."

소설가 김숨(34)씨의 두번째 장편소설 <철> 은 한 가상의 조선소 도시를 배경으로 폭발적으로 진행된 산업화를 온몸으로 겪었던 우리 아버지 세대의 사연을 풀어낸다. 경제위기 때면 등장하는 '초라한 아버지'에 대한 서사가 작가의 흥미를 당긴 것일까? 그건 아니다.

<철> 은 중동의 건설현장에 투입됐다가 귀국한 뒤 무기력해진 아버지 세대를 다룬 김씨의 첫 장편 <백치들> (2006)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으레 있을 법한 그들 세대에 대한 동정과 향수, 혹은 연민을 내비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작가는 서사의 추동력도 빌리지 않고 잔혹하고 관능적인 이미지에 기대어 평생 '노동이 주어진다는 사실' 그 자체에 감사하며, 노동에 중독되고, 그리고 마모돼간 아버지 세대의 역사를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작품은 황무지나 다름없던 한 마을에 조선소가 들어선 뒤 한 세대 동안 진행된 마을의 변모과정을 그려낸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세세한 부각이 없는 점이 눈길을 끄는데,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배 한 척의 건조를 위해 개미처럼 까맣게 매달린 노동자"를 바라보듯, 수많은 육체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소설속에서 명멸한다.

개중 주목할 만한 인물은 김태식과 꼽추다. 김태식은 벌목일을 하다가 조선소 노동자가 되기 위해 마을로 흘러든 힘센 노동자이고, 꼽추는 조선소 노동자를 꿈꾸었으나 신체적 이유로 그것이 불가능해지자 이발관을 차려 마을사람들에게 틀니를 만들어 주고 혹은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쌓아가는 인물이다.

두 사람 모두 비극적 결말을 맞지만 삶의 궤적은 상이하다. 김태식은 노동을 "일종의 구원이자 축복이었으며 일종의 선(善), 그리고 일종의 종교" 여기는, 노동을 갈급하던 아버지 세대의 아이콘이다. 반면 육체노동을 멸시하는 방식으로 재산을 불리며 조선소의 배를 사들일 궁리를 하고 있는 꼽추는 노동에 몰각된 노동자들을 비웃는, 어떤 의미에서 작품 전체를 관장하는 인물이다.

작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자본의 축적, 산업화의 진행, 농경사회의 몰락, 산업자본의 쇠퇴,금융자본의 흥기 등으로 이어지는 우리 현대사에 대한 우화로 읽혀진다. '근면, 성실, 진보, 지향을 외치며 조선소 노동자들을 부리고 있을 뿐'인 조선소의 확성기는 박정희 시대를 통과해온 아버지 세대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것이며, 용광로가 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쇳물 속으로 과감하게 내던져지는 천 년도 더 전에 만들어진 조각상'들은 공업입국ㆍ개발지상주의라는 괴물 앞에 파괴되고 말살됐던 전통문화와 가치의 다른 이름이다.

또한 마을에서 열릴 만국박람회 축하행사의 하나인 서커스단의 곡예비행 장면과 조선소 용광로로 뛰어드는 노동자의 투신 장면이 교차되는 대목은 끔찍한 노동현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해 아시안게임, 올림픽으로 상징되는 '3S 정책'을 폈던 군사정권시대를 향한 지독한 풍자다.

꼽추, 쇠공놀이의 등장, 우화적 방식에 의한 산업화 비판, "열기에 휩싸인 갓난아기들의 몸뚱이에서 열꽃이 피고, 광포천변에 심어진 개나리들이 오줌처럼 노란 꽃을 틔웠다" "갓난아기 만한 문어를 사다가 찜통에 넣고 찌는 여자들"과 같은 강렬한 이미지는 작가가 습작시절 리얼리즘 소설의 모델로 염두에 두었다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을 연상시키게도 한다.

김씨는 "감상적으로 사안을 바라보지 않으려는 내 스타일이나 정서 때문에 '난쏘공'의 분위기를 떠올리는지도 모르겠다"며 "마을 사람들이 꿈꾸는 '철선'의 완성을, 허상에 불과한 '목적'을 쫓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해한다면 이것은 1970년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존재하는 보편적인 이야기로도 읽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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