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년여 동안 '치킨게임(출혈경쟁)'을 벌여온 세계 반도체 업계가 불황이 장기화하자 잇따라 감산과 감원을 선언하는 등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공급 과잉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락과 글로벌 소비 위축에 이어, 컴퓨터(PC)나 휴대폰 등 수요산업의 내년 경기 전망도 불투명해지자, 강도 높은 자구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하이닉스는 최근 경기 이천 본사에서 김종갑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노조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고통분담 및 자구노력 방안'에 합의했다. 하이닉스 노사는 이 자리에서 희망퇴직과 무급휴가 실시, 임원 감축 등을 골자로 한 인력 조정안에 합의했다. 하이닉스는 임원진의 30%를 줄이는 한편, 임금도 최고경영자(CEO)는 30%, 기타 임원은 10~20% 이상씩 각각 삭감키로 했다.
낸드플래시 메모리 분야 세계 2위 업체인 일본 도시바도 장기 시황 악화를 견디지 못해 감원과 조업단축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달 27일부터 내년 1월 4일까지 일본 서ㆍ남부 지역의 공장 가동을 중단키로 했으며, 반도체 생산라인의 파견 및 기간제 근로자 800여명도 줄일 방침이다. 도시바가 반도체 생산을 중단하는 것은 2001년 이후 7년 만이다. 도시바는 반도체 공급 과잉과 수요 감소에 따른 가격 급락으로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 동안 595억엔(9,5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독일의 D램 반도체 제조업체 키몬다 역시 글로벌 경기 침체로 심각한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블룸버그 통신은 내년 초 현금 고갈 위기에 처한 키몬다가 투자자 유치에 실패할 경우 사업의 지속성 여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런 어려움을 반영이라도 하듯, 키몬다는 이달 초로 예정됐던 4분기(회계연도 기준 7~9월) 실적 발표도 이달 중순으로 미뤘다. 증권업계에선 키몬다의 올해 4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 급감한 4억7,600만유로(약 8,000억원)에 그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올해 3분기 세계 메모리 반도체 업체 중 유일하게 흑자를 냈던 삼성전자가 '무(無)감산' 전략을 고수하고 있어 주목된다. 삼성전자 측은 "D램의 지속적인 가격 하락과 경기 침체로 모든 업체들이 감원과 감산을 추진하고 있지만, 우리는 현재 이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치킨게임의 종착역이 보이는 만큼 독자행보를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D램 시장에서 '더 큰 용량'과 '더 빠른 속도', '더 미세 공정' 등을 중심으로 한 3대 차별화 전략을 실행 중인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시장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차세대 저장 장치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시장을 중점 공략, 2012년 100억달러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 시장에서 50%를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소비심리가 회복되지 않는 이상, 반도체 업계의 구조조정 움직임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노근창 연구원은 "소비심리 위축과 수요산업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보여 최소 내년 1분기까지는 반도체 업계의 긴축경영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기초체력이 약한 몇몇 기업들은 이 과정에서 문을 닫는 일도 생겨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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