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배우의 눈물을 믿지 않는다." 영화감독이나 PD들이 하는 말이다. 작품 속 얘기가 아니다. 실제 삶에서,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애통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흘리는 눈물조차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웃음이나 분노, 표정과 말도 마찬가지다. 정말 솔직한 감정의 표현인지,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몸에 밴 연기인지, 아니면 고도로 계산된 행동(내숭)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감독과 PD들조차 이렇게 헷갈리니 일반 국민은 말해 무엇하랴. 어디까지가 연기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구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몇 해 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어느 여배우가 기자회견을 열어 눈물로 사죄하고는 마치 촬영(녹화)을 끝내듯 돌아서자마자 냉정한 표정으로 빈정거리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녀의 '명연기'에 속아 사람들이 비난을 멈추었음은 물론이다. 연기와 진실의 혼동은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 특정 이미지가 강한 배우일수록 자주 일어난다. 사람들은 작품 속의 '그'의 이미지와 실제의 '그'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배우 자신이 그렇게 착각하는 경우까지 있다. 모든 것이 연기로 통한다. 세상은 거대한 무대이고, 삶 자체가 연기다.
▦'연기와 진실의 혼동'이 가장 심한 곳이 정치판이다.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정치인들의 말, 행동, 감정 하나하나가 사실은 모두 자신의 인기만을 계산한 '연기'라는 것이다. 일부에서 유인촌 문화부장관의 국정감사장 욕설파문을 순간적 감정 표현의 '사실' 그대로 해석하지 않으려는 것도 그가 뛰어난 배우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다. 연기를 정치에 가장 성공적으로 결합한 인물은 연설문을 대본으로 삼은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었다. 그는 1981년 3월 암살범의 총에 가슴을 맞은 위기상황에서도 "여보, 내가 좀더 날렵하게 피했어야 하는 건데"라는 명 대사까지 남겼다.
▦지난달 26일 인도 뭄바이에서 발생한 테러 현장에서 그야말로 필생의 연기로 목숨을 건진 배우가 있어 화제다. 아시아계 영국배우인 조이 지툰으로, 그는 '죽은 연기'로 식당에 난입한 테러범들의 눈을 속였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피를 옷에 묻힌 채, 숨조차 쉬지 않고 시체처럼 바닥에 가만히 쓰러져 있는 그를 테러범들은 죽은 것으로 판단해 그대로 지나쳤다. 5분간의 혼신을 다한 '명연기'로 생명을 구한 셈이다. 이런 연기라면야 얼마든지 박수를 받을 만하다. 세상에는 오직 자기의 죄와 흠을 숨기기 위한 연기도 얼마나 많은데.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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