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도 '불용(不用) 예산 탕진병'이 심하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가릴 것 없이 남은 예산 쓰기에 안달이다. 멀쩡한 보도블록을 바꾸는 공사판을 지나며 국민들은 부아가 치민다. 국민들은 불황 극복을 위해 허리띠를 조여 매는데, 공직 사회는 남은 예산 처리에 골몰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10년이 되지 않은 보도블록은 바꾸지 못하게 했다는 정부 지침은 어디로 갔는지 국민들은 영문을 몰라 한다.
어디 보도블록 뿐인가. 연말이 되자 공직 사회에는 불요불급한 물품 구매가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예산이 제 돈인 양 사무용품 비품, 심지어 전자제품 구입에 펑펑 써댄다. 한 행정기관은 복리후생비 집행 잔액 1억여 원으로 상품권을 구입해 직원들에게 나눠줬다니 어이가 없다. 이러고도 공복을 자처하는가.
급기야 감사원이 나섰다. 8일부터 열흘 동안 예산 규모가 큰 120여 개 기초자치단체와 40개 중앙행정기관 하부기관에 대해 연말 예산집행 실태를 감사한다. 감사 자체를 탓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타이밍이 문제다. 사후약방문 그 자체다. 11월에 시작된 보도블록 교체는 이미 마무리 단계다. 깔끔하게 공사가 완료된 곳도 많다.
출ㆍ퇴근 시간이나 점심 시간에 한 번쯤 보도블록 교체 현장을 눈 여겨 본 감사원 공무원이 있다면 감사 계획을 이렇게 잡진 않았을 것이다. 예산 잔치가 끝난 뒤에 감사를 해본들 땅으로 들어간 혈세가 국고로 돌아올 리 없다. 거의 해마다 감사를 하면서 '불용 예산 탕진'실태 감사 만큼은 예방 효과가 중요하다는 점을 몰랐다면 직무 유기다. 이런 감사에 무슨 고려가 필요한가.
불용 예산을 탕진하는 것은 잘못된 예산 편성과 계획에 대한 문책, 불용 처리했을 때의 예산 삭감 등을 우려한 때문이다. 예산을 너무 많이 남기는 것도 문제지만, 불용 예산을 마구잡이로 쓰는 것은 범죄나 다름없다. 정부는 9월에 내놓은 바 있는 '연말 예산 몰아쓰기 근절 대책'을 재점검해 더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바란다. 지금은 단 한 푼의 예산도 허투루 쓸 수 없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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