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선과 충돌한 뒤 거꾸로 뒤집힌 어선에 갇혀 있던 선원 7명이 사고 발생 4시간30분 만에 극적으로 구출됐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수중 시계(視界)도 거의 '제로(0)'인 상태에서 진행된 해양경찰의 구조 작전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다.
1일 오전 1시45분께 제주시 북동쪽 39㎞ 해상. 전날 오전 제주항을 출항한 뒤 조업을 마치고 정박 중이던 목포선적 안강망 어선 동화호(69톤)가 '쿵~'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배 밑바닥을 드러낸 채 뒤집혔다. 인근을 지나던 1,102톤급 화물선 삼진럭키호와 충돌한 것이다.
잠시 후, 갑판장 최전옥(61)씨 등 선원 7명이 단잠에 빠져 있던 5평 남짓한 침실과 기관장 김갑호(50)씨가 있던 기관실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잠이 덜 깬 선원들은 서로 뒤엉킨 몸을 헤치고 필사적으로 침실 입구를 찾았다.
선원 김모(54)씨가 제일 먼저 침실 문을 열고 뛰쳐나갔지만 곧 바닷물이 밀려들었고, 김씨는 눈 깜짝 할 사이에 바닷물에 휩쓸려 실종됐다.
김씨를 뒤따르던 최씨는 곧바로 문을 닫고 선원들과 함께 옷가지 등으로 입구를 틀어막았지만 뼈 속까지 얼 것 같은 차가운 바닷물이 어둠을 뚫고 스멀스멀 흘러 들었다. 다행히 배가 뒤집히면서 선내 공기층이 미쳐 빠져나가지 않았고 파고도 높지 않아 해수 유입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탓에 선원들은 크게 흔들리지 않고 버텼다.
2시간 정도 흘러 선실 3분의 1 가량이 바닷물로 차오르고, 조타실에 있던 선장 박모(51)씨가 빠져 나오지 못해 숨졌을 것이라는 생각에 선원들은 죽음의 공포에 떨며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선실 입구가 막힌 데다 무리하게 탈출을 했다가 죽음을 재촉할 수 있다고 판단 한 선원들은 서로를 껴안으며 구조의 손길을 기다렸다.
그렇게 추위와 공포 속에서 다시 1시간여가 지나자 뒤집힌 선창에서 '쾅쾅' 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구조대가 도착했음을 직감한 선원들은 망치 등으로 배를 두드리며 구조 신호를 보냈다. 선원들의 생존을 확인한 해양경찰 122구조대 요원 12명은 바로 구조작업에 나섰지만 선원들을 배 밖으로 무사히 구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고 선박의 해난구조 여건이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선체 구조도 모른 상태에서 수중 시계도 확보되지 않아 희미한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봉사 문고리 잡기'식 수색을 해야 했다.
게다가 선원들이 갇힌 선실 입구에는 로프와 어망 등으로 막혀 자칫 구조대원이 그물에 걸리는 '2차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컸다. 해경 구조대 요원들은 1시간30여분 동안 번갈아가며 그물 등을 칼로 절단, 겨우 사람 한 명이 빠져나갈 수 있는 탈출통로를 확보해 선원들을 구조했다.
구조된 선원들은 "캄캄한 배 속에서 갇혀 있을 때는 죽는 줄만 알았다"면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동료들끼리 서로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며 끝까지 버텼다"고 말했다.
한편 해경은 이 사고가 조업을 마치고 정박 중인 동화호를 서귀포항에서 완도항으로 항해 중인 삼진럭키호가 충돌해 일어난 것으로 보고 선원들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 중이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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