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증권 매각 비리 사건의 핵심 인물인 홍기옥(구속) 세종캐피탈 사장과 정화삼씨의 동생 광용(구속)씨가 친분이 있는 기업인 2명과 함께 강원 속초시의 한 골프장에서 만난 시점은 이 달 14일. 검찰이 19일 세종캐피탈에 대해 압수수색을 하고 홍 사장을 체포하면서 본격 수사에 착수하기 5일 전이다.
이 모임에 참석했던 한 기업인은 검찰에서 "오래 전에 잡혀 있었던 약속이며 대화도 담소 수준이었다"고 진술했으나 검찰은 신빙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시점이나 당시 상황으로 미뤄볼 때 검찰 수사에 대비한 사전 '입맞추기' 성격의 회동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미 정씨 형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내사사실을 미리 알고 공범들과 사전 모의를 했다는 정황을 확보한 상태다.
당시 회동에서 이들은 정씨 형제가 홍 사장에게서 받은 30억원의 성격에 대한 검찰 진술을 사전 조율한 것으로 보인다. 정씨는 수사 초기 검찰에서 "30억원은 홍 사장에게 개인적으로 빌린 돈"이라고 주장했고 이는 골프회동에서 도출된 결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대통령의 형 건평씨 보호방안이 논의됐을 수도 있다. 이 경우 "30억원은 순수하게 우리들끼리의 거래였다고 진술하자"는 식의 논의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 파국 대비한 각종 안전장치들
당사자들만 입을 맞추면 충분히 승산 있는 대책이었다. 돈을 주고받으면서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이미 '안전장치'들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다. 우선 홍 사장은 30억원을 자신의 통장에 입금한 뒤 도장을 통째로 정씨 형제에게 넘겼다. 홍 사장쪽 계좌추적만으로 잡아내기 어렵게 한 것이다. 노건평씨의 실소유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경남 김해시의 상가 점포에 대해 홍 사장이 5억원의 근저당을 설정한 것도 안전장치의 하나로 해석되고 있다. 상가 매입 자금을 홍 사장에게 빌렸다고 '포장'하기 위해 실제 대차관계 없이 근저당을 설정해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노씨 보호를 위한 장치로도 해석되고 있다. 전 세종증권 고위 관계자의 검찰 진술에 따르면 노씨는 "내가 노력을 해서 일이 성사됐으니 나에게 직접 돈을 달라"고 주장했지만, 정씨 등은 '리스크 회피'를 위해 노씨를 최대한 숨겨야 할 입장이었다. 돈 거래나 상가 매입 등 과정에서 노씨의 이름이 표면적으로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들의 은폐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는 반증이다.
● 전략가 홍기옥, 결국은 실패
이 같은 수법의 입안자는 홍 사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증권업계 등에 따르면 세종증권의 오너였던 김형진 전 회장은 매각에 부정적 입장이었다. 전직 세종증권 임원은 본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김 회장은 자신의 회사를 팔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홍 사장이 '이대로는 회사가 더 유지될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해 매각 작업이 진행된 것"이라며 "매각 작업은 사실상 홍 사장이 주도적이고 은밀하게 진행했다"고 말했다. 홍 사장이 매각 성사에 목을 맬 수 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홍 사장은'약한 고리'를 파고든 검찰에 의해 싱겁게 무너졌다. 금융권 등에 따르면 회사가 매각되기 전 세종증권은 직원들에게 월급도 주지 못했을 정도로 어려웠고 홍 사장의 개인 형편도 넉넉하지 못했다. 전 세종증권 임원은 "홍 사장이 한 임원으로부터 생활비조로 5,000만원을 빌린 뒤 매각 성사 이후에 갚은 적도 있다"고 전했다. 검찰은 이 같은 전후 사정을 확인한 뒤 홍 사장을 상대로 "도대체 30억원을 어디서 마련했으며 정씨 형제에게 모두 빌려줄 이유가 있었느냐"고 추궁했고 그는 쉽게 백기를 든 것으로 알려졌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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