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의 단면을 독특한 시각으로 포착한 두 사진전이 동시에 열리고 있다. 전혀 다른 소재와 형식을 취하면서도 뚜렷한 사회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사진예술의 묘미를 느끼게 해주는 전시들이다.
■ 이미지가 잠식한 도시의 풍경
주명덕(68)씨는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1세대 작가로 꼽힌다. 혼혈아들을 찍은 첫 개인전 '홀트씨 고아원'(1966)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출발한 그는 밤처럼 어두운 화면에 산과 나무를 담은 '잃어버린 풍경' 시리즈, 사라져가는 문화유산을 담은 사진 등 우리 삶의 터전을 기록하는 데 평생 매달려왔다.
그의 카메라가 요즘 향하고 있는 곳은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도시들이다.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이 '도시정경'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10년간 주씨가 기록한 도시 사진 75점을 걸었다.
'명동' '광화문' '여의도' 등 익숙한 지명이 제목으로 붙은 사진들이지만 그 속의 풍경은 퍽 낯설다. 쇼윈도와 버스정류장 등 거리 곳곳에 이름 모를 서양 모델들의 이미지가 넘쳐나는, 국적 불명의 도시 서울의 모습이다.
달리는 차 안에서, 혹은 걸으면서 촬영한 사진들은 도시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처럼 흔들린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왠지 공허하고 쓸쓸하다.
주씨는 도시를 거대한 빌딩이나 아스팔트가 아니라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이미지들의 세계로 바라본다. 그는 "요즘 도시에서는 광고가 종교가 됐다. 쇼윈도를 보면 마치 서울이 외국인에게 잠식당한 것 같지 않냐"고 말했다.
전시를 기획한 박주석 명지대 교수는 "힘을 빼고 가볍게 찍은 것처럼 보이지만 40년이 넘도록 쌓아온 대가의 사진철학이 축약된 사진들"이라고 말했다.
대림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2009년 '대지', 2010년 '전통공간' 등 3년에 걸쳐 주씨의 작품세계를 집중 조명한다. 230점의 사진과 글이 담긴 사진집도 나왔다. 1월 18일까지, 관람료 2,000~4,000원. (02)720-0667
■ 소녀들의 화장, 현대인의 정체성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본관은 지금 10대 소녀들의 대형 사진으로 가득하다. 솜털과 모공까지 보일 만큼 가깝게 소녀들을 끌어당겼다.
아직 어린 티가 역력한 피부 위를 덮은 비비크림과 눈 위에 그려진 짙은 아이라인, 눈동자를 가려버린 서클렌즈.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생에 이르는 소녀 25명의 표정없는 얼굴 위에 덧씌워진 어설프고 서툰 화장은 마치 불안한 그들의 내면을 가리는 가면 같다.
1999년 '아줌마' 연작을 시작으로 특정 계층의 초상사진을 통해 한국사회를 바라봐온 중견 작가 오형근(45)씨의 개인전 '소녀들의 화장법'이다.
오씨는 지난해 봄부터 동대문, 성신여대 앞, 홍익대 앞 등 학생들이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500명의 소녀를 길거리 캐스팅했다. 변태라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교수 명함과 작품집을 보여주며 소녀들을 설득, 120명이 그의 스튜디오로 찾아왔다.
"왜 소녀냐"는 질문에 오씨는 "소녀들은 여자도 아이도 아닌 중간 지점에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갈팡질팡하는 그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씨는 "요즘 소녀들은 어머니와 언니가 아니라 이영애나 김태희의 화장 이미지를 배우고, 그것을 통해 정체성을 구축한다"면서 "소녀들은 결과적으로 남성 관객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필터링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한 오씨는 '친절한 금자씨' '추격자' 등의 영화 포스터 작업도 했다. 이번 전시는 내년에 스위스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그는 "인물 유형들의 공통된 욕망을 샘플링하는 작업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요즘은 한국인의 불안과 강박을 주제로 한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12월 31일까지. (02)735-8449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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