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리 마커스 지음ㆍ최호영 옮김/갤리온 발행ㆍ312쪽ㆍ1만3,800원
"인생은 짧습니다. 이혼하십시오." 시카고의 한 법률회사가 버젓이 내걸었던 광고 카피다.
우리가 정말로 합리적인 세계에 살고 있다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저따위 광고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여론의 압력에 못 이겨 2주만에 광고판을 내려야 하긴 했지만, 이 광고는 평소 이혼을 생각도 하지 않던 사람들까지도 그것에 대해 생각하도록 부추기는 효과를 실제 발생시켰다. 광고 내용이 현실적인 실체는 아니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삶의 맥락과 밀접한 생각거리를 제공, 신념은 물론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클루지> 의 저자에 따르면 이는 인간이 '클루지스러운 뇌'(132쪽)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결혼을 낭만적인 연애와 화끈한 성적 만남의 관점에서 보도록 유도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요술을 부리는 요술쟁이가 바로 '클루지(kludge)'다. 저자에 따르면 클루지는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그러나 놀랄 만큼 효과적인 해결책"(11쪽)으로 정의된다. 쉽게 말해 인간 진화의 중추에는 고장 나기 십상인 애물단지 컴퓨터가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클루지>
우리는 왜 해로운 줄 알면서도 흡연, 섹스, 비디오게임, 인터넷 등의 중독에 빠져들까? 우리는 왜 그저 부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남들보다 더 부자가 되고 싶어 할까? 모든 게 진화의 오류 때문이다. 진화는 우리가 행복하도록 우리를 진화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도록 진화시켰기 때문이다.
전체 자연계로 보자면 나약하기 짝이 없는 포유동물인 인간은 가혹한 자연 조건에서 생존하며 진화해 왔다. 저자는 그 진화라는 기제 때문에 인간의 신념과 정신은 형편없이 오염돼 있다고 말한다. 합리성이 상황 논리나 감정에 복속되고 만다는 것이다. 2003년 아들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 결정이 좋은 예다. 부시는 말했다. "어쨌든 그는 내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던 녀석이다."(139쪽) 이 말을 보면 부시의 결정에는 확실하게, 감정이 개입돼 있었다는 이야기다.
왜 우리의 마음은 중요한 순간에도 이따금 딴 데 가 있는 것일까? 최근 영국의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회의 시간에 섹스에 대한 공상을 하는 사무원이 세 명 중 한 명 꼴이다. 그같은 심리적 공백으로 1년에 경제적으로 78억파운드의 손실이 난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주의결핍장애가 인간의 숙명과도 같이 된 것은 나약한 인간이 가혹한 조건에서 살아 남으려다 보니, 반사 기능과 숙고 체계가 어설프게 통합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책은 가장 인간적인 특징인 언어에서마저도 진화의 찌꺼기가 엄존하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 한 장을 할애한다. 저자는 "영어에는 거친 조각들, 멍청한 틈들, 해롭고 도착된 불규칙성들이 가득하다"(191쪽)며 "진화의 흠 많은 걸작"이라 규정한다. 이 대목에 이르러 저자는 최근의 언어학적 통찰을 인용, 논의를 진지하게 이끌어 간다.
인간의 숙명적 맹점을 통렬하게 꼬집던 저자는 말미에 이르러 우리의 세계를 현명하게 만드는 13가지 방법을 일러준다. 불완전함을 통찰하라는 전제 하에서 이뤄지는 제안이다. 그 중 '자신의 충동을 미리 예상하고 결정하라' '누군가가 여러분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결정하라' 등의 제안은 이 책이 인간의 어두운 구석을 들추는 심리학 저서로는 대단히 드물게 사회통합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행복 가설> 로 유명한 미국의 긍정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기쁨과 통찰을 선사하는 놀라운 책"이라고 평했다. 행복>
지은이 개리 마커스는 고교를 중퇴하고 23세에 MIT에서 뇌ㆍ인지과학 박사학위를 취득, 30살에 뉴욕대 종신 교수가 된 진화심리학계의 스타 과학자. 책은 그의 이론이 낯설지도 모른다는 점을 제목에서 밝혀둔다. '생각의 역사를 뒤집는 기막힌 발견'이란 부제 옆에 '클루지'를 행여 '클러지'로 읽지나 않을까, 발음기호까지 달아 두었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