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법원의 존엄사(소극적 안락사) 허용 판결은 비록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의 허용이지만, 인간이 존엄하게 자연사할 수 있는 권리를 처음 인정했다는 점에서 향후 안락사를 둘러싼 제도적 장치 마련에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무엇보다 안락사 논란의 핵심 쟁점인 '생명권'과 '자기운명결정권'의 충돌 문제에 대해 "인간의 존엄성이 생명권에 기초를 두고 있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서도 구현돼야 하는 궁극적 가치"라며 '존엄사권'을 인정, 스스로 죽음을 맞을 권리에 의미를 부여했다. 식물인간상태인 고령의 환자 김씨를 인공호흡기로 연명시키는 것은 "정신적 고통의 무의미한 연장을 강요하는 결과를 가져와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인격적 가치를 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특히 환자가 유서 등을 통해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지만, "억지로 기계에 의해 연명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는 뜻을 평소 밝힌 점과 70대 중반의 고령 등을 환자가 존엄사를 원했다고 보는 근거로 제시했다.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환자에게 명시적인 의사를 확인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이 같은 기준이 향후 존엄사 판단의 하나의 잣대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그러나 존엄사권을 '회복 불가능한 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치료 중단'으로 엄격히 제한했다. 법원은 "적극적 안락사 및 모든 유형의 치료중단에 관해 다룬 것이 아니다"고 선을 긋고, "치료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하고 환자의 의사가 추정되는 경우에 한해 의사가 인공호흡기 제거 요구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원은 그 동안 환자가 치료를 중단하면 사망하게 될 경우 환자의 자기결정권보다 생명권을 우선해 의사가 치료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대법원은 2004년 의식불명 환자로부터 인공호흡기를 떼어내 사망에 이르게 한 '보라매병원' 사건 판결에서 가족과 의사에게 각각 살인죄와 살인방조죄를 선고했고, 병원들도 이를 근거로 연명 치료를 중단해달라는 환자와 가족들의 요구를 거절해왔다.
하지만 환자의 회복 가능성이 있었던 보라매 병원 사건과 달리, 회복 불가능한 환자에 대한 연명 치료 중단이 가능한지는 현행 법률상 명확치 않았다. 이상돈 고려대 법대 교수는 "학계에서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입장이었지만, 법적 공백에다 판례마저 명확치 않아 혼선이 계속됐다"며 "이번 판결이 무의미한 치료행위 중단 여부를 분명히 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일단 존엄사권을 제한하긴 했지만, 그 권리를 인정함에 따라 유사한 소송이 잇따르는 등 안락사 논의는 한층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김씨의 존엄사 인정 사유로 환자의 상태와 함께 환자가 고령으로서 기대여명이 3~4개월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혔다. 이에 따라 식물인간상태의 젊은 환자에게도 존엄사 권리를 인정해야 하는지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통 속에서 생명을 연장하는 말기 암 환자들도 존엄하게 죽음을 맞을 권리가 있다는 '적극적 안락사' 주장도 적지 않아 논의의 차원이 확산될 수 있다. 이 교수는 "그 동안 안락사 문제가 국내에선 법적 공백 상태나 마찬가지였는데 사회적 합의를 거쳐 안락사법 제정 논의를 시급히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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