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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방파제 역할' 가의도 르포/ "굴·톳과 함께 웃음도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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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방파제 역할' 가의도 르포/ "굴·톳과 함께 웃음도 돌아와"

입력
2008.12.0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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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르 차르륵 쏴아아….” 시커먼 기름 띠를 벗은 바다는 소리부터 달랐다.

30일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 지난해 12월 7일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삼성중공업 크레인선 충돌로 ‘기름폭탄’을 맞은 지 1년, 다시 찾은 섬은 뽀얀 속살을 드러냈다. 파도에 쓸려 이리저리 구르는 조약돌 소리가 정겹다.

사고 당시 가의도는 유출된 기름을 온 몸으로 받아내는 거대한 방파제 역할을 했다. 그 덕에 피해가 전라도 바다까지 번지는 참극은 면했지만, 이 작은 섬은 두께가 한 뼘이 넘는 기름덩어리를 뒤집어 쓴 채 만신창이가 됐다.

그 후 40가구 주민 65명은 절망의 나날을 보냈다. 화수분 같던 바다는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 주 수입원인 59㏊의 전복, 해삼 양식장이 폐쇄되고 지천으로 널린 굴과 미역, 홍합이 폐사했다. 낚시배는 선착장에 묶여 녹이 슬었다.

5월 수산당국의 안전성 발표 이후 주꾸미철부터 부분조업이 시작돼 태안의 다른 어민들은 돈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의도 사람들은 방제작업으로 바다에 나갈 수 없었다. 여름 한철 장사인 민박도 공 쳤다. 낚시꾼들도 좀체 돌아오지 않았다. 간간이 찾아오는 관광객마저 깨끗해진 바다에서 막 따올린 굴과 홍합을 외면해 주민들의 상처를 덧냈다.

그 사이 섬 사람들은 정부에서 지급한 생계비 몇 푼과 방제인건비로 근근히 살았다. 주만성(68)씨는 “다른 지역 어민들과 달리 우리는 사고 이후 바다에서 돈 번 날이 하루도 없다”며 “방제작업 일당 6만원도 제때 주지 않아 힘들다”고 말했다.

어민들이 그나마 버틴 것은 4월까지 하루 평균 2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찾아 ‘섬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평균 나이 일흔이 넘는 주민들은 조약돌을 뜨거운 물에 삶아 일일이 닦아냈다. 아흔 살 넘은 어르신까지 거들었다.

이런 노력 덕에 섬은 지난 여름부터 서서히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이날도 주민 30여명은 섬 남쪽의 바위틈에 남은 기름찌꺼기를 닦아내고 있었다. 박순자(60)씨는 “내년 봄부턴 예전처럼 낚시배도 타고 미역, 홍합도 따기 위해 김장 등 열 일 제쳐 놓고 바다 살리기에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갯바위는 섬이 되살아 났음을 확인시켜줬다. 섬 전체를 둘러 싼 갯바위에는 1년 간 채취하지 않은 자연산 굴이 발 디딜 틈 없이 붙어 있고 살도 통통하게 올라 있다. 한 줌 크기로 자란 톳은 파도에 살랑거렸다. 이복례(79) 할머니는 방금 딴 굴과 홍합으로 가득 찬 대바구니를 보여주며 “노인네들이 섬을 깨끗하게 해놓았으나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게 글 좀 잘 써달라”고 신신 당부했다.

이장 주동복(79)씨는 “사고 초기 어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고향을 떠나기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가의도에서는 한 사람도 떠나지 않고 섬을 지켰다”면서 “섬이 깨끗해지면서 어렵지만 다시 시작한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가의도=이준호 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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