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안정된 노사구조로 품질 중심의 기술산업, 미국은 마케팅 중심의 서비스산업에 비교우위가 있다." 누구든지 동의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럼 한국의 비교우위는? 마이클 위트 인시드(INSEAD) 경영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빠른 의사결정과 신기술 상용화 능력에 비교우위가 있다"고 한다.
1990년 대까지 캐치업 기술개발 전략으로 선진국 기술을 모방ㆍ상용화해서 수출을 이끈 성공담을 떠올리면 한국기업의 상용화 능력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선진 각국의 지적재산권 보호강화, 기술수명주기 단축, 개방형 기술혁신을 활용한 사업화 전략 등 급변하는 환경은 우리 기업들을 잠시 머뭇거리게 하고 있다.
지식과 기술혁신이 기업 가치와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기술사업화는 기업 생존의 상시적 과제가 되고 있으나, 연구개발(R&D)에 많은 투자를 하고 기술역량을 확보해도 신제품ㆍ신사업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나라 연구기관과 기업의 체감 사업화 성공률은 10% 미만이라고 한다. '죽음의 계곡(Death Valley)'과 '다윈의 바다(Darwinian Sea)' 때문이다.
'죽음의 계곡'은 기술 개발에 내재하는 위험이나 불확실성으로 초기사업화 단계의 응용연구에 자금이 투입되지 않아 겪게 되는 어려움이며, 다음 단계인 '다윈의 바다'는 기술 외적 요인들, 즉 경영ㆍ마케팅ㆍ시장변화 등으로 겪게 되는 어려움이다. 루이스 M. 브랜스컴 하버드대 교수가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기회를 놓고 벌어지는, 적자생존 싸움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미국 벤처기업의 성공 신화 뒤에는 투자유치뿐만 아니라 경영ㆍ마케팅 등 전방위적 지원을 한 벤처캐피털의 역할이 컸듯, 우리도 기술기업이 죽음의 계곡과 다윈의 바다를 쉽게 건널 수 있도록 짐을 덜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의 시스템을 마냥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각 분야에서 잇따라 고정관념을 깬 성공사례가 희망을 주고 있다. 서구 선진국의 스포츠라 여겨지던 피겨스케이팅이나 수영 골프 등에서 김연아 박태환 신지애 같은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기술 이전ㆍ사업화 분야에서 "휴대폰을 아무리 많이 팔아도, 장미 한 송이만 팔아도 외국에 로열티를 줘야 해 남는 게 없다"는 하소연이 잇따르지만 올해 화학연구원이 '에이즈치료제 후보물질'을 미국 길리어드사에 80억 원의 기술료와 매출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이전했고, 농업기술원은 녹색장미인 '그린 뷰티' 품종을 개발해 처음으로 로열티를 받고 해외진출을 한다.
기술 이전ㆍ사업화가 더 활기를 띠기 위해 정부가 맡아야 할 시급한 과제는 자금과 전문성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기업이 글로벌 기술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술금융 시스템' 개선과 사업화의 전(全) 주기적 지원이 가능한 '기술사업화 전문회사'의 육성 등을 골자로 한 '제3차 기술이전ㆍ사업화 촉진 중기계획'을 수립해 곧 발표할 예정이다.
세계적 산업ㆍ경제 환경의 지각변동으로 기존 산업기반이 흔들리고 있어 기업활동이 결코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새로운 성장산업인 바이오, 녹색에너지 산업 등에 대한 기대와 수요는 커지고 있어, 새로운 기회가 무궁무진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기업, 특히 중소기업의 '사업화 본능'을 다시 한번 일깨울 때다.
김영학 지식경제부 산업경제실장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