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고집은 관가든, 정치권이든 알아준다. 그 고집은 투박한 말투, 굳은 표정과 어우러져 종종 '헌재 접촉' 등의 설화를 빚고 '부자 가슴 대못' 등의 소란을 낳지만 좀처럼 주장을 꺾지 않는다. 그런 강 장관도 "결과적으로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마지못해 물러선 적이 있다.
국회에서 민주당 박영선 의원으로부터 "지난 9월 10억 달러 규모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을 연기한 것은 실책이 아니냐"는 추궁을 받고 나서다. 강 장관은 그답지 않게 "전 잘못한 것은 항상 시인한다"고 토까지 달아 좌중을 웃겼다.
▦ 강 장관이 실수를 인정한 외평채 사건은 정부가 달러 유동성 경색 우려로 제기된 '9월 위기설' 등을 잠재우기 위해 미국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 10억 달러의 외평채를 발행하려던 방침이 무산된 것을 말한다. 로드쇼를 떠나기 직전만 해도 정부는 한국의 대외신용도가 높다며 미국 국채 금리에 1.8~2%의 가산금리를 얹어주는 조건이면 투자자를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했다. 그러나 리먼브러더스 파산신청 등의 여파로 투자자들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자 "나쁜 조건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돈을 빌릴 필요가 없다"며 되돌아왔다.
▦ 당시 정부는 "외평채 발행은 연기했지만 외국인 투자자들과의 1대 1 면담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확인했다"고 떠들었으나 시장의 반응은 달랐다. 정부의 호언장담과 시장상황을 감안하면 금리가 좀 높더라도 외평채 발행을 강행해야 하는데, 그에 따른 책임문제를 꺼린 관가의 몸 사리기로 일을 그르쳤다는 것이다. 때마침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의 핵심인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현대차 계열사 채무탕감 의혹의 피의자로 8월 말 2심에서 5년 징역형과 함께 법정구속돼 관가에 냉소적 기류가 돌던 터였다.
▦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이 외평채 발행 무산에 작용했다는 얘기다. 변 씨는 최근 외환은행의 1심 무죄판결에 앞서 열린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관료의 책무는 위기의 예방과 조기 진화"라며 "후배들이 '변양호 신드롬'으로 위축되지 않고 떳떳이 일할 수 있게 재판부가 잘 판단해 달라"고 말했다. 정부가 마른 논에 물대는 은행의 역할을 강하게 주문하며 유동성 및 정책 지원을 아끼지 않는데도 시중의 돈 가뭄은 여전하다. 흔히 그렇듯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말이 다를 것을 우려하는 탓이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지 답은 자명하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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