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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30> 금호아시아나 지원 음악영재 강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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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30> 금호아시아나 지원 음악영재 강유경

입력
2008.11.28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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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곡조의 클래식을 틀면 애가 우는 거예요. 어디가 아파서 그런가 했는데, 음악을 끄면 울음을 그치고, 다시 틀면 또 울고…. 우는 모습이 가슴 아팠지만 너무 신기했어요." 바이올린 영재 강유경(12ㆍ경기 의정부시 호암초등 6년)양의 어머니 박신애(42)씨의 설명이다.

유경이는 애기 때부터 음악적 감수성이 남다른가 싶더니, 다섯 살 되던 해 텔레비전에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의 공연을 보고는 곧장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종이 상자를 어깨와 턱 사이에 끼우곤 문구점 수수깡을 활 삼아 흉내를 냈죠. 소리는 안 났지만, 그 모습에 어찌나 가슴이 뭉클하던지…. 이때 '딸의 손에 언젠가는 진짜 바이올린을 안겨줘야지' 하고 마음먹었죠."

어머니의 바람은 유경이가 성장하면서 걱정으로 바뀌었다. 어린이 연습용 바이올린이 수십 만원, 연주용은 웬만한 중형차 값과 맞먹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1시간에 몇 만원씩 하는 레슨비는 또 어떤가.

주변에선 "바이올린은 대한민국 상위 1% 내 재력가들의 악기"라며 바이올린 연주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라고 만류했다. 아버지 강용길(47)씨도 "아내의 마음 고생이 느껴질 때마다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 걸 후회했다"고 했다.

엄마 아빠의 기도가 하늘에 닿은 것일까. 유경이에게 진짜 바이올린을 만질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유경이의 재능에 주목한 동네 음악학원 원장이 무료로 악기를 빌려주고 월 레슨비 30만원도 받지 않았다.

유경이는 금세 언니 오빠들을 따라잡더니 바로크합주단이 주최하는 '바로크 콩쿠르'에 나가 저학년부 1등을 거머쥐었다. 불과 일곱 살로 '저학년' 축에도 끼지 못하던 때였다. 내친김에 '소년한국일보 콩쿠르'에도 나가 보란 듯이 특상을 받았다.

타고난 재능에 무대 체질이었던 탓인지, 유경이는 "콩쿠르에 나갔을 때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없다"고 했다. "순서를 기다릴 때 좀 떨렸는데요, 무대에 올라 인사하고 연주를 시작하니까 그냥 우리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했어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속담도 유경이를 배신하지 않았다. 잇단 수상으로 초등학교 1학년 때인 200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 입학 허가도 받았다. 재능있는 초ㆍ중ㆍ고교 학생들을 뽑아 주말에 전문 실기지도를 하는 과정이다. 각종 국제 무대에서 수상한 김선욱, 손열음, 박준호 등 주목 받는 음악 영재들도 이 예비학교를 거쳐갔다.

문제는 또 돈이었다. 어머니 박씨는 "합격 통지서를 받고도 연 200만원 가량의 등록금 낼 엄두가 안나 입학을 포기할 생각이었는데, '콩쿠르 때부터 유경이를 지켜봤다'는 한 독지가 도움으로 등록을 했다"며 "6년이 지난 지금까지 도움을 받고 있다"고 고마워했다.

기회는 또 다른 기회를 만드는 법. 유경이는 예비학교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구본주 선생을 사사하며 실력이 부쩍 향상됐다. '악기 타령'을 시작한 것도 이쯤이다. 사실 피아노 플루트 등의 악기와 달리 현악기인 바이올린 연주 실력을 키우려면 좋은 악기가 필수적이다.

"아무리 악기가 좋아도 연습을 당해낼 수 없지만, 좋지 못한 악기는 분명 한계가 있어요. 연습을 하고 또 해도 더 이상의 소리가 나지 않거든요." 장구 탓하는 선무당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유경이가 악기 대여 프로그램을 갖춘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과 연을 맺은 것도 이 즈음이다.

"재단에서 바이올린을 받은 뒤, 전에 쓰던 바이올린을 켰더니 철사 소리가 나는 것 같았어요. 지금까지 그 악기로 어떻게 연주를 했나 싶었죠." 일반인에겐 비슷한 소리로 들렸겠지만, 그 미세한 차이를 이토록 잔인하게 표현할 정도니, 유경이의 '연장 타령'은 정당화 될 법도 했다. "아주 유명한 언니들이 쓰던 거래요. 그러니 잠이 왔겠어요? 새벽까지 켜다가 경비실에서 한 소리 듣고서야 잠이 들었죠."

사실 운도 따랐다. 재단은 바이올린 첼로 등 총 21점의 악기를 대여하고 있는데, 마침 바이올린 1대가 반납돼 새 임대자를 찾기 위한 오디션이 열렸다. 유경이는 그 동안 갈고 닦은 실력으로 일반 바이올린 절반 크기의 '테스토레(Carlo Giuseppe Testore)'를 낙점 받았다.

테스토레는 1724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제작된 바이올린. 11세 때 세계적 매니지먼트사인 ICM과 최연소 계약을 맺었고 2007년 애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 상(Avery Fisher Career Grant Award)을 받은 이유라가 사용했던 악기다.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운 작은 크기의 명기(名器)다.

테스토레는 유경이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테스토레로 음악성과 테크닉을 키운 유경이는 2005년 1월 '음악춘추 콩쿠르'에서 1위에 올랐고, 2006년 8월 줄리아드와 함께 하는 '서울 뮤직 페스티벌(Seoul Music Festival with the Julliard)'에서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지난해 6월엔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이 마련한 영재콘서트를 통해 개인 독주회까지 가졌다.

아버지 강씨는 "음악가에게 연주 기회, 특히 독주회 만큼 큰 성장의 기회는 없다"며 고마워했고, 어머니 박씨는 "단순히 악기를 받은 게 아니라, 앞날의 희망까지 같이 받았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딸을 돕겠다"고 다짐했다.

유경이의 꿈은 장영주, 안네 소피 무터와 같은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것. 하지만 이는 중간 과정일 뿐 진짜 꿈은 따로 있다. "바이올린 선생님이 될 거예요. 능력은 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잖아요, 제가 무료로 가르치려고요. 저를 도와주신 분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도 하고요." 나눔은 또 다른 나눔을 낳는 법이다.

■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은 1977년 '문화는 가꾸고, 영재는 기르고'를 모토로 설립됐다. 금호그룹 창립 60주년인 2006년 내건 슬로건 '아름다운 기업'의 간판이자 심장에 해당한다. 박삼구 회장이 직접 문화사업을 진두지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단은 유경이의 사례에서 보듯 음악 영재 발굴과 악기 무상 임대에서부터 연주자 항공권 제공, 장학금 지원 등을 통해 음악 영재들이 세계적인 연주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 밖에 클래식 공연 기획, 해외 오케스트라 초청 연주회, 예술 교육 프로그램과 미술관 운영 등 다양한 방법으로 문화예술계를 지원하고 있다. '한국 메세나의 대표주자'라는 수식이 과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000년 서울 신문로 사옥에 마련한 386석 규모의 '금호아트홀'에선 국내ㆍ외 연주자들이 매주 목요일 '아름다운 목요일' 공연을 선보인다. 올해로 11년째다. 또 기획 연주회와 대관 연주회가 열려 365일 내내 클래식 음악이 마르지 않는다. 2006년엔 같은 건물 내 210석 규모의 '문호아트홀'도 생겨 음악 영재들이 실기 교육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금호가 주최하는 콘서트 시리즈는 '금호월드오케스트라', '금호 영재 콘서트(초ㆍ중학생 대상)', '금호 영아티스트 콘서트(고교생 이상)', '아름다운 목요일' 등 모두 4개. 월드오케스트라 시리즈를 통해 매년 2~3개의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가 한국을 찾고 있고, 학생들 대상의 두 무대를 통해서는 영재 음악가 1,000여명이 배출됐다.

재단 음악사업팀 박선희(35) 팀장은 "문화예술 분야는 지속적인 후원이 관건"이라며 "내년부터는 예술의 전당과 손잡고 '음악 영재 캠프 & 콩쿠르'도 개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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