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대를 메지 않으려는 것은 은행직원만이 아니다. 공무원들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이 독촉하면 장관이 나서고, 장관이 보채면 그제서야 공무원들이 움직인다.
환란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일촉즉발의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공직 사회의 모습이다. 지금껏 100조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 부었음에도, 시중에 돈이 돌지 않고 시장 불안만 갈수록 증폭되는 이유 중 하나다.
원래 ‘복지부동’성향이 강하기는 하지만, 공무원들이 더 납작 엎드리게 된 배경엔 ‘변양호 신드롬’이 있다. 우여곡절끝에 1심 무죄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외환은행 헐값매각사건에 휘말려 쇠고랑까지 차야 했던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사건이 공직사회에 남긴 후유증은 예상보다 훨씬 크다. 정책적 판단(외환은행 론스타 매각)이 사법적 단죄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소신 있게 일해 봐야 본인만 손해”라는 학습 효과다.
한 전직 관료는 “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기업 구조조정을 밀어 부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왜 모르겠느냐”며 “하지만 결과가 잘못되면 사후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도 최근 1심 최후 진술에서 “훌륭한 신하가 치욕을 당하는 것은 나라가 치욕을 당하는 것”이라며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으로 후배들이 움츠러들지 않고 떳떳이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밝혔을 정도다.
이 같은 공직 사회의 분위기가 하루 아침에 바뀌기는 쉽지 않은 터. 그래서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각에서 주장하는 면책 특권까지는 아니라도, 특별법 제정 등의 방식으로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면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정부의 ‘톱-다운’식 의사결정 구조에도 메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대통령의 경제관련발언과 지시가 많아지고 이중엔 시장왜곡을 초래할 수 있는 부분들도 많다 보니, 공무원들도 ‘뒷수습’에 매달리고 무리한 대책을 남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문제에 대해서 본인이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각종 정책은 물론 심지어 금융시장 지표까지 언급을 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경제부처 국장 수준에서 해야 할 업무까지 언급을 하게 되면, 실무자들은 윗선의 지시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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