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고교생을 대상으로 '역사 특강'을 담당할 강사진에 보수 성향의 인사들이 대거 포함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시교육청은 24일 8명의 전ㆍ현직 교원으로 구성된 강사선정위원회를 열어 공개 모집과 추천을 통해 후보에 오른 인사들에 대한 심사를 실시했다.
최종 명단은 25일 확정될 예정이지만 일부 공개된 특강 강사들의 면면을 보면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보수 인사들이 수두룩하다. "예상보다 지원자가 적어 다양성을 기하기가 어려웠다"는 시교육청의 해명을 감안해도 보수 색채는 확연히 드러난다.
'좌편향 교과서' 논란을 촉발한 '교과서포럼' 소속 인물들이 대표적이다. 공동 대표인 박효종ㆍ이영훈 서울대 교수를 비롯, 운영위원인 김광동 나라정책원 원장과 김종석 홍익대 교수, 고문인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와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추천됐다.
소설가 복거일씨와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등 대중에게 친숙한 보수 논객들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밖에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등 국내의 대표적 보수 인사 70여명이 포함됐다. 당초 강사진 규모가 100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념적으로 지나치게 보수 쪽에 경도된 느낌이다.
이 때문에 시교육청이 역사 교육을 빌미로 뉴라이트의 이념 공세에 편승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교과서를 직접 배우는 고교생이 당사자라는 점에서 학교장 교과서 연수에 이은 특정 교과서 퇴출 작업의 연장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시교육청의 특강 계획이 특정 단체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시교육청은 9월 전국학교운영위원회총연합회가 제안한 '현대사 새로 알기' 특강 계획이 알려지자 "어떠한 방침도 정해진 것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시교육청의 특강 강사 명단에는 학운위총연합이 추천한 86명 가운데〈대안교과서 한국근ㆍ현대사〉필진을 비롯해 상당수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강 실시 계획도 이 단체의 제안서의 상당 부분을 차용해 수립됐다.
시교육청이 3일 강사 공개 모집 공고를 내면서 밝힌 학교별 특강 실시 횟수(2회), 특강 시간(90분) 등의 세부 내용은 학운위 제안서를 거의 수용했고, 강사 응모서와 일정관리표 양식까지 똑같았다.
시교육청이 애초에 우편향 역사 교육을 목적으로 강사를 내정해 놓고도 요식 행위에 불과한 강사 모집과 심의 등의 과정을 진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이유이다.
주진오 상명대 역사학과 교수는 "누가 봐도 이념적 편향성이 뚜렷한 인물들을 대거 강사로 기용했다는 것은 역사 교육을 획일적으로 몰고 가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며 "교육의 안정성을 가장 중시해야 할 시교육청이 오히려 학생들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교육청도 강사진이 보수 성향에 기운 점에 부담을 느껴 강사 선정에 신중을 거듭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강사진은 이날 심의에서 확정ㆍ발표하기로 돼 있었으나 몇몇 추천 인사를 놓고 심사위원들 간에 의견이 엇갈려 최종 결정이 미뤄졌다는 후문이다.
시교육청은 25일 강사 명단이 최종 확정되면 26일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고3 학생을 시작으로 역사 특강에 나설 계획이다. 기말고사가 끝난 뒤에는 고교 1~2년생으로 대상을 확대해 내년 2월 말까지 서울 지역 300여 고교에서 특강이 실시된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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