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학기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 추천서를 써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지방의 로스쿨에 지원 중이라고 한다. 서류 보관함을 열어 성적을 확인하고, 공동으로 팀을 꾸려 활동했던 기록들을 검토했다. 공들여 써낸 쪽글들과 또박또박 치른 시험지도 살펴 보았다. 무엇보다 열정적으로 활발하게 발표하던 그 학생의 모습을 상기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오케이 메일을 보냈다.
요새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아주 당당하게 자신이 수업을 통해 무엇을 성취했는지를 미리 서술해 온다. 추천자가 혹시 뭔가 빠뜨릴까 봐 밑 자료를 준비해 오는 것이다. 하긴 자기가 해온 일을 누가 세세하게 알 수 있을까. 추천 받는 입장에서의 모종의 쑥스러움이나 민망함은커녕 자기 추천에 강한 신세대를 보면 웃음이 난다.
그 학생은 내가 관찰한 모습과 자신의 평가가 대략 일치하였다. 그렇지만 나름대로의 강조점을 찾고 또 어딘가 기름기가 좀 돌도록 양념하고 새롭게 구성하는 일은 내 몫이었다. 마침내 만들어진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위 학생은 본인이 2008년 봄학기에 강의한 '지구촌 시대의 여성과 리더십' 과목을 통해서 뛰어난 학업 성취와 함께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여성 리더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는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특히 사회적 소수자로서 여성들의 삶과 경험에 귀 기울이고 성 평등한 여성주의 문화를 만들어가려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팀 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동료 학생들과 함께 문제의식을 개발하고 진취적인 미래 활동을 모색했습니다. 한 학기 동안 진행된 수업에서도 적극적인 참여와 발표 등을 통해 교수와 함께 수업을 끌어가는 주체적 학생의 면모를 발휘하였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을 종합해 볼 때 위 학생에게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이 온전히 보장되는 지구시민사회를 만들어나갈 인권전문 법조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히 기대되므로 추천하는 바입니다. 저는 --씨가 우리 사회에 온존하는 온갖 차별을 시정하고 사회정의를 추구하고 공공선을 실현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려는 귀 대학원의 비전에 부응하면서 차세대 리더로 커나갈 것을 확신합니다."
그 학생이 우리 시대를 빛낼 인재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사실 차원이라기보다는 희망사항일 수도 있다. 짧다면 짧은 한 학기 동안 얻게 된 신뢰감에 대한 강한 증명을 요구 받는다면 약간의 주저함이 생길 것이다. 추천은 격려를 넘어서서 자신의 학문적이고 인격적인 명성을 거는 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선생님은 유학을 위한 준비 서류에 영어로 "이 학생을 추천하는 데 어떠한 유보도 달지 않는다"는 확신에 찬 표현을 쓰시기도 한다. 이렇듯 과감하게 추천하는 배경에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선주문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말이 씨가 되듯 추천서가 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추천서가 그 친구의 앞길을 모사하는 지도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공부방 서가를 정리하다가 나는 은사님의 친필과 우연히 조우하게 되었다. 박사 과정에서 보통 출강하게 되는 타 대학 강의에 대한 추천서였다. 거기에도 '믿음'이라는 용어가 맨 마지막 줄에 들어가 있었다. 그 분을 떠올릴 때면 오래도록 입으셔서 해진 바바리 소매 끝과 항상 들고 다니시던 가죽 가방, 그리고 낡았지만 편안해 보이는 신발이 함께 따라 올라온다. 제자들의 삶을 여전히 지켜보고 계시는 맑은 눈동자와 함께.
윤혜린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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